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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腹)에 바람을 넣다 덧글 0 | 조회 16,428 | 2009-09-19 00:00:00
정동철  



배(腹)에 바람을 넣다


-1993-


 



“아저씨! 바람 좀 널게요.”


“그러려무나. 가만있자, 어디로 갔나. 아, 저기 있군. 내가 바빠서.....”


“아니에요. 제가 널 줄 알아요.”


지금은 자전거포(自轉車鋪)가 어디 있는지 내 눈에는 잘 뜨이지가 않는다. 어딘 가엔 있긴 하겠지만 옛날처럼 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아파트 입구마다 아무렇게나 쓸어져 있는 바람 빠진 자전거가 여기저기 나둥글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다. 카 센터에 가서 컴프레서로 바람을 넣어 오자니 자동차도 아닌 처지에 뭔가 개운치가 않아서 일게다.


“고마워요.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오냐. 또 와라. 조심하고....”


내 집 창고의 것을 쓰듯 생면부지의 주인 아저씨와 자전거 바람넣기는 늘 훈훈하였다. 일상적 일이다.


자전거를 탈만한 시간은 없었지만 내가 고 3일 때도 사정은 비슷했었다. 불행했던 것은 입시 3개월을 앞두고 그 흔한 바람을 나는 자전거 튜브가 아닌 나의 배에다 넣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사실이다.


배에다 바람을 넣다니.....


옛날 얘기하기를 좋아하면 늙는 증거라 한다.


환갑이 되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야화(夜話)를 말한다는 것이 왠지 궁상맞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학 덕분에 어제가 옛일이 되는 세상이라 54학번(學番-그때는 이런 단어가 없었지만)이 되기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니까 배에다 바람을 넣는다는 것은 야화가 되고도 남는 멀고 먼 옛날 얘기이긴 하다.


본시 옛 얘기는 별 게 아니다. 지금의 상식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통용되고 있었다는 자체가 바로 옛 얘기이고 거기다 약간의 웃으게 소리가 가미되면 그게 야화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돈을 줄 테니 학교에 오라던가, 테니스는 상놈이나 하고 양반은 장죽(長竹)을 뻐끔거리며 구경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따위가 그런 것이다.


그러고 보면 10년 안 팍 사이의 ‘의료(醫療) 야화’는 무척 많을 것이다. 멀리 몇 십 년까지 머리를 싸매고 궁리할 필요가 없다. 치료법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하게 변하니 말이다. 장기이식이나 AIDS와 관련된 것들은 물론 분야마다 따지면 없던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정신나간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인슈린 주사로 정신을 까무러치도록 내보냈다가 다시 찾아주는 이상스런 충격요법이나, 머리 속에 칼을 넣어 앞 골과 가운데 골 사이의 신경 회로(回路)를 끊어버리는 수술 속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이른바 야화 속에 묻혀있는 것들이다.


전문적인 얘기들은 재미가 없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나 여건들만 해도 야화는 수두룩하다.


“의료보험 환자일수록 청진기를 대야하네. 정신과 의사니까 필요 없는 짓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니 명심하게!”


지금은 세상을 달리하고 말없이 북망산(北邙山)에 계신 선생님은 훤히 앞날을 내다보시고 충고를 하셨다. 아니다 다를까. 이곳 저곳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不信)은 싸움 박질 이 지나쳐 가운이 찢기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곤 한다.(주: 나는 1974년 초까지 청량리 뇌병원에 있었다. 최신해 원장님은 서울시에서 의뢰하는 행여 환자에 대해 청진기를 꼭 대라고 하셨다. 병원을 나와 개원을 하고도 해마다 선생님 자택에 초청되어 저녁을 하곤 했었는데 1977년 보험이 시작되자 그 말씀을 다시 상기시켰다.)


“야 이놈들아 사람 살려! 사람 살리려고 왔지 너의 놈들 거드름 피고 잘 난 척 사람 죽는 꼴 보려고 왔냐! 뭐, 속병이 아닌데 진찰을 해서 무얼 하느냐고! 좋아하는군, 청진기 한 번 대보면 어디 덧이라도 나더냐. 이놈들!...... 보험(保險) 환자라고 괄시하고 할 것을 안 했으니 이렇게 된 게 아니냐 말이다. 도둑놈들 같으니...... 너희들이 의사라고?”


세상을 오래 사신 분의 말씀이 적중한 것이다. 보험과 관계없이 비싼 돈으로 치료를 하다 운명한 보호자는 오히려 딴판이다.


“죄송합니다. 너무 누를 끼쳤습니다. 운명은 재천이라 하는 데 선생님이 애쓰신 보람도 없이, 어쩔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감사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용서를 빕니다.”


명(命)이 다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의사를 괴롭혔다는 뜻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있었던 현상이다. 요즘 이런 사람은 거의 없다. 의료 브로커들이 곱게 넘어가지를 않는다. 왜 의사가 됐는지 그게 한스럽고 답답한 게 오히려 실정이다.


그렇다고 간호사나 조무사에게 측은하다고 대접을 받느냐 하면 그런 형편도 아니다. 무심결에 반말을 했다거나 시 덥지 않게 청소를 시켰다는 이유로 또 한차례 창피를 당해야 한다. 하여간 치사한 얘기지만 개(皆) 보험이 되면서 돈 몇 푼 때문에 환자와 정면으로 시비를 겪어야 할 뿐 무슨 때가 되어 감사하다는 표시는 없어진 풍속이 정착되었다. 사사건건 의사의 실수라면 반사적으로 침소 붕대 하는 언론의 미운 오리 새끼가 된지도 오래다. 결국은 불신감으로 해서 오히려 손해를 입는 것은 환자가 되고 있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질시(嫉視)는 계속되고 있다.


그나저나 ‘바람’ 얘기가 너무 옆으로 흘렀다.


배에 바람을 넣는다?


병원에 가는 것은 정말 싫었다.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 것도 괴로운 참인데 빵꾸난 자전거에 바람넣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주사기를 볼라치면 기겁을 하게 된다. 질린다. 무섭다. 끔찍스러웠다. 정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나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스트랲토 마이신을 맞고 나면 궁둥이에서 발가락 끝까지 뻗쳐 가는 그 짜르르한 아픔, 그리곤 배를 벌리고 반듯이 누워 배 전체를 빨간 소독약으로 몇 차례 씻어내고는 보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그놈의 대(大) 주사기의 굵고 긴바늘을 배에다 찌를 때는 필경 백지 장이 됐을 것이다. 이어 바람을 넣기 시작한다. 자그마치 두 달인가를 거르지 않고 그렇게 매일 했다. 당연히 그것은 생각만 해도 지옥이다.(주: 나는 1953년 12월부터 두 개의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배에 바람을 넣어야 하는 지긋지긋한 치료와 그 때문에 휴학을 하고 입시 몇 개월 전에 학원이나 슬슬 다니는 신세도 그렇지만 우선 친구가 없어졌다는 것이 큰 지옥이었다.)


폐병을 고치는 데 가장 애로가 되는 것은 폐(肺)가 가만히 있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숨을 쉬어야 하니 폐는 계속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상처가 아물기 힘들다는 것이다. 배에 바람을 넣으면 횡경막이 위로 올라가 폐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므로 그만큼 폐병이라는 상처가 아무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었다. 마치 무릎의 상처를 고치려면 무릎을 가급적 고정시킬수록 유리한 이치와 같았다.


배에 바람을 넣는 치료는 의예과에 합격이 되고서야 그쳐졌다. 알고 보니 폐결핵이 아니라 폐디스토마였음이 신체검사에서 확인이 된 것이다.


의예과에 합격되는 날 집으로 달리는 길에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나에게 바람을 넣어주신 그 의사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합격했습니다.”


“그래? 간호원! 주사기 준비해야지......”


의사와 치료비 얘기를 하는 것은 그땐 커다란 실례였다.


치료비는 누님이 늘 건수 하셨기에 얼마가 어떻게 들었는지 그것을 알리 없는 나로서는 그날만은 조금 버팅 길 듯 했다. 오진(誤診)에다 합격의 기쁨을 무시한 그 유명한 의사가 미웠다. 그러나 기억에서 살아질 수 없는 영원한 의사로서 나의 마음에 삭여진 사건임엔 틀림없다. 오로지 환자 치료 이외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진지(眞摯)함이 전부였으니까.


의료 야화인지 아닌지 그것은 아마도 훗날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