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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그를 우해 샴페인은 터지는가? 덧글 0 | 조회 16,066 | 2009-10-03 00:00:00
정동철  



 누구를 위해 샴페인은 터지는가?


1994


 


 



계절은 속일 수가 없다.


봄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청첩장이 쌓인다. 제주도가 아니라 하와이나 동남아 어딘가 에서 밀월의 단꿈을 만끽하게 될 환상적 신혼 부부를 위해 결혼식장은 값싼 하객의 떠버리와 엄숙한 장내의 선언이 뒤섞인다. 정말 잔치 집의 즐거운 손들인가?


결혼식. 토요일 12시 반, 어느 젊은 직장인의 얘기다.


한 시간 이상 걸릴 교통 사정을 고려하여 11시 20분에 출발을 서둘렀다.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겨두고 상사(上司)의 눈치를 보며 직장을 빠져 나온다는 것은 찜찜했지만 도리가 없다. 스트레스다.


같은 고향에서 올라와 둘도 없는 친구임을 자처하고 있는 형편이라 달리 방법이 없다. 불나게 식장을 향했다. 예상보다 길은 더 복잡했다. 적어도 30분전엔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시작되는 시간에 대기도 힘든 것 같았다. 식은땀이 난다. 스트레스다.


―사고(事故)는 이래서 나는 것이구나―


속으로 마음을 달래며 식장으로 뛰어 들었을 때는 이미 신랑이 입장을 하고 있었다. 꼭 해 주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는데――


“제기랄……”


스트레스.


방명록(芳名錄)을 향했다.


무슨 방명록이 이렇게 많은가. 10군데는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떤 아파트 청약 마감 시간의 접수 대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하객(賀客)이 양가에 엄청났다. 도대체 세도(勢道)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알만했다. 문민 정부 덕택에 지난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친구의 아버지 때문인가 보다. 왜 스트레스지?


예식장 밖이다.


몰려든 차로 대로가 막히고 경찰관이 동원되어 아무리 정리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토요일 퇴근 시간의 번잡스런 길이 꽉 막히고 빵빵거리는 소리에 날벼락을 맞은 듯 갈 길이 바뿐 사람들은 아우성이다. 집단 스트레스.


이제 신부의 입장이다.


일찍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그들의 시선을 자신의 몸짓으로 보기 좋게 독점하여 지휘할 수 있었던 경험이 없었던 탓으로 뻣뻣하고 둔탁해진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당사자의 스트레스.


주례의 축사가 무엇이었는지 갑작스런 관객(觀客) 속의 주인공으로서 갖가지 연기(演技)를 하려니 힘이 들었다. 뒤 미쳐 또 다른 연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스트레스.


밤무대의「깜짝 쇼」를 방불케 하는 매우 선정적(煽情的)인 연기(演技)가 요구된 것이다. 맥주에 담긴 계란 노른자를 신랑과 신부가 터지지 않게 상대방 입에 넣었다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애교일지 모른다. 날계란을 신랑의 바지 끝에서 반대쪽으로 통과시키는 것이나, 바나나 먹기, 그리곤 이른바「자부동 파티」에서나 있을 법한 주문이 나온다. 가위를 주며 신부의 깊은 곳 어딘가에 숲이 있는데 거기서 나무 하나를 베어오라는 것이다.


과연 결혼 피로연 장인가?


실갱이 끝에 겨우 비행기에 올랐다. 비로써 두 사람만의 세계가 달콤하게 줄을 이을 것 같았다. 형편은 그러나 간단치가 않았다. 긴장이 풀리자 힘겹고 역겨웠던 절차를 돌이켜 보니 슬며시 울화가 화살로 변해 날아들었다.


왜 그런 짓을 하게 했으며 한 수 더 떠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술집 여자로 만들었냐고 신부가 다그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땅으로 여행을 가는 마당에 어떻게 말을 하고 또 격식을 갖추며 창피를 당하지 않고 방문국(訪問國)에 걸 맞는 처신을 해야할지 머리가 오락 가락 하는 판국에 신부의 추궁까지 받아야 하니 괜스레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까지 엄습한다. 정말 스트레스다.


피로와 일교차를 극복하고 호텔에 들어서자 평생 잊지 못할 또 다른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몸과 마음이 지쳐 녹초가 되어 침대에 몸을 내던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영화의 한 장면을 그럴듯하게 사진기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울고싶다. 왜 진작 이런 사태를 대비하지 못했는지 자신이 미련스럽고 원망스럽다. 스트레스, 그리고 또 스트레스.


드디어 촉촉한 단꿈의 서곡이 촛불에 타오르고 정중동(靜中動)의 격렬한 열정이 치닫는 때에, 대체 무슨 연고인가. 천근같은 몸이 눈 녹듯 침대 위에 힘없이 늘어지는 것이다. 당황한 자신을 아무리 달래도 그럴수록 깊은 수렁에라도 빠져들 듯 결국 첫날밤의 추억은 비극으로 끝났다. 체면이 왕창 구겨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스트레스가?


「사회 재(再)적응(適應) 평가치」라는 표가 있다.


우리의 생활을 다각도로 분류해 놓고 거기에 스트레스 점수(點數)를 매겨놓은 것이다. 부모상(父母喪)을 당하면 67점, 상사와 싸우는 일이 있으면 34점, 그런가 하면 휴가는 22점이다.


결혼은 몇 점이 될까? 일생 일대의 기쁜 날이니 영점이겠지.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다. 자그마치 50점이나 된다. 만일 예의 형편이면 족히 70점은 넘고도 남을 것이다. 대부분의 신랑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직장에 다시 나타날 때 까칠해진 경우가 태반이다. 마치 격렬한 성적 행위로 그렇게 됐을 것이라고 놀려대지만 실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과보호로 성장한 가날 푼 사나이들은 뒤 미쳐 몸살을 앓고 직장 생활에 재 적응하는데 제법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를 위해 샴페인은 터졌는가?」


헤밍웨이의 작품도 아닌 이 묘한 의문을 젊은 세대들은 특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 결혼 당사자를 위한 멋진 날의 축하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 그 해답은 기성세대에겐 기대할 것이 없다.


신선한 개혁이 젊은이들 스스로에게 있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의한「결혼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진단 명이 생길 판이다. 축의금과 체면으로 멍드는 하객은 그렇다 치고 당사자의 아름답고 영원한 추억이 이렇듯 파랗게 멍든다면 언제까지 이 같은 형태가 답습되어야 하는 것일까?


돈과 권력, 요컨대 체면이 샴페인을 멍들게 한 이상 그로부터의 해방은 당사자들의 신선한 의지에 달려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