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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하나」 덧글 0 | 조회 15,947 | 2009-10-03 00:00:00
정동철  



우리는「하나」


1994


 


 



무한한 비밀을 지닌 체 인간의 호기심을 삼킬 듯 넘실대는 바다를 박차고 치오르는 태양, 그 화려한 빛은 금년에도 어김없이 신문마다 웅장하게 장식된 정초의 메인 차림표였다.


어제도 떴고 내년에도 뜰 태양이지만 유독 금년 정월 초하루만을 위해 떠오르는 양 원단 휘호와 함께 우리들 서민의 마음을 휘어잡기에 족했다. 어깨를 펴고 한껏 숨을 들이켜 꿈을 잃지 말자고 강요(?)하는 것 같기만 하다.


무엇을 다져야 할까?


왠지 무겁게 짓눌리는 의무감이 앞선다. 스트레스라면 이해가 갈까? 아니지, 그것은 물길을 음흉하게 바꿔놓는 천상(天上) 천하(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탈을 이용한 민중(民衆)의 대변자의 음모를 키우고 있었다.


솔직히 힘들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야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미소로서 언제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에 새해가 신나고 살맛이 날지 모르지만 직장인은 형편이 그렇지가 않다. 우악스런 채찍은 일견 사라졌는가 싶지만 보다 교활한 다그침은 더 지능적으로 그 잔인함이 철부지들을 향해 가차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문민 정부와 UR협정에 따른 WTO시대가 열어준 93년의 대가는 「자율적」이란 단서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을 뿐 결과는 벅차기에 차라리 모진 참형(斬刑)과 같았다.


농장에서, 공장에서, 막장에서, 그리고 사무실에서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려도 무너진 국경을 헤집고 땀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때를 놓질 새라「제4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분리(分離)되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산업 혁명을 대변해 준「제2의 물결」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고방식에「제3의 물결」이 주장하는 정보(情報)를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형편인데 느닷없이「우리는 하나이며 공동 창조를 선택한다」는「제4의 물결」에 걸 맞는 수영을 하라는 것이다.


헷갈려 어리둥절한 머리를 좀처럼 정리할 틈이 없다. 결코 낙오되어서는 안 된다며 비지땀을 흘려도 족함은 멀기만 하다며 아우성인 형편에 국제화시기에 적응하기 위해선 무국적(無國籍)으로 살아남기 작전을 짜야한다고 법석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위기를 도약으로?


스트레스! 스트레스뿐이다.


문제는 그러나 피해갈 묘안이 없는 것이 직장인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형편도 못된다. 탈무드는 말한다.「마지막 한 수는 있다」. 감나무에서 연시 떨어질 때를 기다리듯 마지막 한 수가 절로 생길 리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흐르는 물을 막을 길은 없다.「제5의 물결」이 조만간 출렁거리며 거세게 다가올 날도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작심 365일이 그 하나이고, 재빨리 파도를 탈 줄 아는 지혜를 발동하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쉼터가 필요하다.


신세대는 작심 3일이 아니라「3초」라고 한다. 워낙 세상사가 빨리 돌아간다는 뜻인 모양이다. 아니면 믿을 만한 세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학교 3학년만 되도 신세대 축에 끼지 못하는 터에 카페와 각종 유기장(遊技場)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사우디의 왕자들을 연상케 하는 고급 복합 휴식처에서 발랄하고 멋지게 킥킥거리며 지껄이는 얘기는 현기증이 인다.


“우리가 오랜지라 고요? 4천 원 짜리 커피로 이 정도의 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은 사치가 아니죠. 일과 휴식을 분리시키며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뒤떨어진 발상이 아닙니까? 일과 휴식이 공존(共存)하는 곳에 정보 교환이 활발히 진행되는데 어째서 사치가 됩니까?”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소위 정보 혁명의 「제3의 물결」을 겨냥하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토플러가 만든 이 유행어가 생긴지 벌서 어언 10년이 됐다. 삶의 현장에서 땀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한물 가기 시작한「제3의 물결」로 입만 나불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정객(政客)의 속성과 전연 차이가 없다. 스트레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말하자면 엉터리 신세대인 것이다.


직장인은 그런 여유가 없다. 그런 생각에 안주할 형편이 아닌 것이다. 정보 시대가 아니라 그것을 전제로 기업 혁명이 이루어져「우리는 하나」라는 가치관을 눈치채지 않으면 안 되는 긴박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우리」는 소집단의 의미가 아니다. 국경을 초월한 것은 물론 환경과도 함께 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메이너드 2세와 머턴스박사의 공저「제4의 물결」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물질(物質)주의는 몰락하고 정신이 재평가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업 활동이 사활(死活)의 갈림길이 된다는 암시다.


작심 며칠로는 될 수 없는 사태가 물결치고 있다는 얘기다. EU, NAFTA사이에 APEC이라는 어중간한 들러리에서 뭔가를 하겠다고 뻐겨봤자 어차피 농업 혁명은 한물 갔으니 제2, 제3, 그리고 제4의 3각 파도 위에서 곡예(曲藝)를 하지 않으면 안될 형국이라 말 그대로 앗질 할 따름이다. 초긴장 상태!


지난해에 바닥을 친 경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자력(自力)이라면 땀이 나도 신날 일이다. 스트레스 따위를 운운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고차원적「물결」과는 다른 3각파도 위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 엔 고, 저 유가(油價), 그리고 중국 아니면 베트남이나 라오스 같은 특수(特需)를 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쉼터가 필요하다. 연초부터「쉼터」는 차마 말할 처지가 못되지만「쉼터」만큼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집이 가장 안전하고 유리한 곳이다. 불행하게도 그러나 집이 예전과는 다르다. 아내가 만만치 않다. 심신(心身)상의 투자를 하지 않고선 큰 대자로 누울 수 있는 쉼터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아침저녁 TV드라마가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내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암시가 아니라 직설(直說)이다.


기술(技術)은 집을 어떻게 해서라도 쉼터가 되도록 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길뿐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얻는다해도 손익 계산은 그 쪽이 한결 나을 것이다.


최소한 부부는 우리가 아니라「나나」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그저 웃을 수 있어야 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