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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터의 포수가 더위쯤 덧글 0 | 조회 15,843 | 2009-10-03 00:00:00
정동철  



사냥터의 포수가 더위쯤


―강박관념의 노예들―


1994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날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사람」이 땅에다 작대기 하나를 꽂았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를 뒤흔들게 될「시간(時間)의 개념(槪念)」으로 바뀔 줄은 미쳐 아무도 몰랐다. 얼마 만에 한 번이라던가. 하여간 확률적으론 거의 영에 해당하는 슈메이커 레비혜성이 우주 생성의 무슨 열쇠처럼 목성이라는 자물쇠에 꽂히며 혜안(慧眼)의 불기둥을 일으키고 있듯 그러나「시간(時間)」을 알게 된 인간은 그로부터 희비(喜悲)를 동시에 물려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강박관념(强迫觀念)이라는 것이다.


작대기가 만들어 놓은 그림자로 해서 시간의 흐름을 알고는 시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녀서 길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길이 있어 사람이 다녀야하고, 말이 있어 문법(文法)이 생긴 것이 아니라 문법이 있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모여서 살다보니 법(法)이 생긴 것이거늘 법(法)이 우선(于先)하여 거기에 따라 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듯 철저하게 우리는 시간의 노리개가 되고 말았다. 특히 현대인에겐 초(秒)까지 쪼개어 시간의 틀에 집어넣어 살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비극을 수용해야만 하게 됐다. 디지털 인간!


생방송, 뜨거운 조명이 넥타이를 욱죄는 긴장된 순간「큐」와 더불어 안면(顔面)을 바꾸고 주어진 시간에 좌우간 무언가를 한정된 시간 내에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문(注文)이다. 질문은 크고 대답은 1분이다. 겉 할 기가 반복되지만―그래서 다음의 PD가 할 일이 있으리라―참으로 어이없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그 계획을 짜고 연출하며 찍어야 하는 사람들과 그들로 하여금 일사불란하게 소신 것 일할 수 있도록 밀어주어야 하는 방송인들의 사고방식은 따라서 빈틈없이 짜여진 틀 속에 철저하게 갇혀 자신의 특성을 잔인하게 무시당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강박관념의 노예들이다. 개성(個性)과 특성(特性)과 번득이는 초월적(?) 발상을 자부하겠지만 그만큼 강박적으로 쥐어짜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비참한 현실인 까닭이다.


번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는 안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아니 인이 배기도록 알고 또 안다. 그럼에도 새김질을 곰씹고 또 씹어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자신, 한심스럽지만 도무지 제어가 안 된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만치 흘러간 물(과거)을 되 퍼 올려 있지도 않은「현재」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를 할라 치니 될 리가 없건만 그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방송 기자들의 특징이다. 벌처럼 쏘다니며 마감 시간에 특종은 아니더라도 뭔가를 데스크에 올려놓지 않으면 배겨날 수 없는 딱한 노예들, 전파를 타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점잖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권위(權威) 뒤편엔 그래서 육두(肉頭) 문자의 쌍소리와 술과 담배는 빼놓을 수 없는 자학(自虐)의 도구가 된다. 말하기를 스트레스라 하지만 가중치(加重値)만 높아질 뿐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세상이 바뀌어 태풍을 기다리는 살인적 더위에 과연 어떻게 하나?


과거심(過去心)을 알 수 있을까? 현재심(現在心)을 알 능력이 있나? 하물며 미래심(未來心)이란 아예 의중(意中)에도 없는 터에 점심(點心(주::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마음속 어디에 점을 찍었다는 禪門 禪答의 話頭)를 거창하게 먹거나 보자는 속물들의 주가(株價)를 정확하게 액면대로 알기나 했으면 다행일 것이다. 신식 말로「발상의 전환」(Zero-base Conception)이 근처에 있지도 않은 처지다.


어려울 것이다. 어렵다면 더 고민해야 한다. 결코 강박관념은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는 게 특징이다.


물위에 반사된 물고기를 문 개를 향해 욕심 내지 말라는 말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