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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파도 위 꿋꿋한 마음 덧글 0 | 조회 15,607 | 2009-10-03 00:00:00
정동철  



한라산, 파도 위 꿋꿋한 마음


1994


 


 



아방은 줄둥이


어멍은 잎둥이


아은 덩드렁둥이


은 꽃둥이



울타리의 올망졸망 호박 덩굴에 호박 넝쿨이 지붕을 덮고있다.


가족을 비유한 제주도의 동요다.


개화 바람이 불기 훨씬 전부터 이미 분가(分家) 자립정신이 뚜렷했던 탐라인(耽羅人)의 핵가족을 멋지게 읊고 있는 한 줄기 호박 덩굴의 잎과, 호박과, 그리고 꽃이 어우러짐은 때묻지 않은 우리네 단란한 가정이다. 닮아서 좋을 훈훈한 부부 생활 속에서 자녀의 성장이 아름답게 영 그는 것은 한 편의 천리(天理)다.


그러나 현실은, 그럼에도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줄기와 잎이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그 정체가 무엇일까?


성질이 서로 안 맞는다고 한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라 하지만 부악을 중심으로 높 낮은 360개의「오름」(주: 분화구 봉우리)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게 탈이라고도 한다.


「름 불엉 휘어진 나무가 봄비가 들온 일어나랴」(주: 바람이 불어 휘어진 나무가 봄비가 온다고 일어나랴)고 상대적 빈곤 속에 쪄든 생활이 문제라고 하는가 하면, ‘설문대 할망’(주: 제주도 설화, 힘이 세고 엄청 커서 한라산을 베개로 누우면 다리는 성산포와 가파도에 이를 정도. 속 고쟁이가 없었던 할망은 명주 백동을 해 오면 목포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는데 99동밖에 못해 육지와 다리를 놓지 못했다. 할멈은 50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흉년이 들어 큰솥에다 죽을 쑤다 빠져 죽었다. 그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죽을 먹고 나중에 할멈이 있는 것을 알고 모두 자살을 하니 한라산의 오 백 장군 바위가 됐다)이래 숫한 토속 신앙과 그 유명했던 천주교란(1901. 5)에서 보듯「호박 덩굴」을 뒤흔들어 이래저래 찢기는 마음들을 열거하기로 하면 고구마 줄기에 달려나오는 넝쿨처럼 실로 그 유형은 부지기수 일게다.


그뿐인가. 숫제 속 궁합이 맞지 않아 살수가 없다고 까탈을 대기도 한다. 하루를 살아도 풋풋한 맛이 있어야 금실을 따질 터인데 도무지 침묵 아니면 고함으로 지겹게 살아야 한다면 부부 당사자의 고리는 물론 자녀의 사람됨이 원만해질 수가 없으리라는 것은 불문 가지다.


부부간의 성생활이 화평한 마음의 요람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성생활이 절대 절명의 선결 문제라고 할 수 없는 것 또한 잘 아는 일이다. 후자의 경우는 일단 제쳐두기로 한다.


든든한 남녀가 살림을 차리고, 한 가정을 이루어 호박 덩굴처럼 재미있게 사는 가운데 끼어 드는 갖가지 갈등으로 마음의 평화가 위협받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하자.


이유가 있다.


천생 연분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부부라 해도, 죽 속에 빠져 죽은 설문대 할망이 부부 생활에 시샘을 해서인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결코「문제(갈등)」를 비켜갈 수 없게되니, 거듭 강조하지만 결국 갈등은 불안을 잉태하고 불안은 정신병을 낳아 부부 당사자는 물론 자녀의 앞날까지 멍들게 하는 까닭이다.


부부 사이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연유들은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


대충 다음과 같이 엮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성질(성격)이 같지 않다.


2) 자라던 어린 시절의 가문과 관습이 서로 달랐다.


3) 배우자가 이웃과 어울리는 태도와 품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4) 살림살이가 찌들어 장마철의 구름처럼 햇볕을 볼 낌새가 없다.


5) 속 궁합이 도무지 맞지 않는다.


6) 배우자의 가족들과 원수처럼 찌푸린 마음을 풀지 못한다.


게다가 결혼을 하면 누구나 길고 짧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또 다른 네 가지 현실 앞에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우선 결혼을 하고 보니 전연 생각지 않던 엉뚱하고 황당한 일로 실망을 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화려한 단어에 포장되어 미쳐 모르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들이닥쳐 이해 할 수 없는 배우자의 몸짓과 생각하는 틀이 어이없는 일로 불쑥 불쑥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도 이래저래 참고 견뎌 본다. 설마 하면서 배우자의 마음을 가늠하며 자신의 입장도 어느 정도 양보하고 아귀를 마쳐 보는 것이다. 그것이 허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깊고 허탈한 늪에 빠지게 된다. 좌절감이다. 때에 권태기라는 밀물이 거세게 다가온다. 앞에서 말한 그것들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이른바 화병으로 이어져 마음에 파도가 거세게 일렁거리기에 이른다.


무슨 죄를 지은 듯 마음은 쫓기고 철렁거리며 동당거려 심란하기로 잠을 잘 수가 없다. 가슴앓이는 물론 매사가 믿어지지를 않는다. 급기야 망상(妄想), 그리곤 생각마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혼(魂)이 나가버리는 것뿐 아니라 몸 여기저기 성한대가 없어진다. 고혈압, 심장병, 위궤양, 당뇨병, 심지어는 암(癌)까지도 뒤따르게 된다.


어떻게 이 파도를 넘어가야 할까?


「물 질」에 익숙한 해녀(海女)라면 허벅을 의지하고 웬만한 파도쯤 별 것이 아니겠지만 부부 사이의 이런 갈등들은 일종의 태풍과도 흡사한 것이기에 손발을 쓸 수가 없다.



너른 바당 앞을 재연(너른 바다 앞을 재어)


질 두질 들어가난(한길 두길 들어가니)


저승길이 왓다갓다(저승길이 오락가락)


무작정


‘주끄는 갠 줄곡, 먹는 갠 찐다’(짖는 개는 여위고 먹는 개는 살찐다)



모든 것을 숙명에 맞기고 먹기만 할 것인가? 그래서 될 일이라면 야 얼마나 한가할까.


전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급하게 소란을 떨면 오히려 해결될 일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즘의 젊은 사람들은 워낙 매사를 조급하게 결정하는 바람에 ‘작심 삼초(三秒)’라고 할 정도로「공항 이혼」이 심심치 않게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좋은 방법일 리가 없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말문을 터보는 것이 그래서 좋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어떻게 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첫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냉정히 솎아내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그「문제」를 풀어내는데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이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소처럼 우직하게 밀어붙일 것인가, 바보처럼 모든 것을 양보 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 타협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셋째, 그러기 위해선 이미 택한 방법으로 정말 그 결과에 대해 분명히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넷째, 세상 물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역시 스스로 따져볼 일이다. 알게 된 그 방법이 세상살이에 얼마나 합당한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체면과 허세 보단 뚝심과 소신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를 두드려 봐야 할 것이다. 왕왕 남의 눈이나 체면 때문에 전쟁하듯 속전속결(速戰速決)을 결행하는 수가 있다. 미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평소 소박한 삶에 대한 지조(志操)와 일관된 신념(信念)으로 이 세상을 살아왔느냐는 점으로 귀착하게 된다.


「먹돌도 람시민 고망 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차돌도 뚫으면 구멍이 난다는 뜻은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확실한 뚝심에 의한다. 제주의 여인들은 특별난 힘과 지혜를 겸비하고 있다. 척박한 땅위에서 남자만 믿고 살기엔 너무나 힘겨워 스스로 바다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오랜 역사가「저승 하루, 이승 일년」의 ‘차사 본풀이’(주: 강리이라는 영웅이 저승의 염라대왕을 잡아와서 이승의 죄인을 심판하고 자신은 차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신화로서 저승에 갔다 오는데 3일이 걸렸는데 이승에선 3년이 됐다. 저승의 하루가 이승의 일년이 되니 한해에 세 명절은 결국 설은 아침, 단오는 점심, 추석은 저녁이 되어 차례를 지내게 됐다는 것)로 끈끈하게 이어진 결과일 것이다.


호박 덩굴의 동요처럼 결국 가정은 단란하고 훈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구태여「마음의 건강」이라는 서먹한 신식 단어를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주: 나는 90년대 거의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제주도 도민을 위한 것이나, 아니면 최고 경영자를 위한 특별 강연을 적어도 연 3-4회 정도는 IMF전까지 해 오고 있었다. 자주 인용된 내용의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