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나라, 「낀 인생(낀생)」
-꼭 알아야 할 것-
2022.02.25.
정신과의사 정동철
우려하던 우크라 곳곳, 드디어 미사일 공격으로 하늘이 흔들린다.(02.24.) 동쪽 머나먼 나라 우린 상관없다는 일각의 입장, 그랬음 얼마나 좋을까. 몹시 두근거린다. 같은 일을 언제 당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 후세들 낀 나라의 낀 세대, 낀 인생-「낀생」이라 부르겠다, 그들의 안녕을 보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쓰나미처럼 넘쳐 들어서다. 정의(正義)란 본시 강대국의 전유물이다. 중견국 가장자리 나라엔 가당치 않다. 오랜 세월 역사가 증명해 준 결론이다. 물론 미리 기죽을 일은 아니다. 다만 ‘힘없는 평화’, 국민을 지킬 수 없었음을 생생하게 봐야 하니 다부진 의지가 필요함을 내칠 수 없다는 뜻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러시아에 대항하여 경제 제재를 하는 판국에 한국은 말뿐 뒤늦게 유감을 밝히니 동맹국 미국, 그들의 이상한 느낌이 선들바람처럼 밀려든다. 거세다는 뜻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나의 몸에 소름이 이는 듯 재채기가 터진다. 예민하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국내 사정 또한 혼란스러워서다.
새해 들어 북에서 동쪽으로 쏘아대던 미사일, 김정일 80주년 생일(02.16.)기념, 러시아 하바롭스키 출생이 삼지연으로 바뀐 15일의 행사처럼 행여 남쪽으로 향한다면? 선제공격을 한다지만 그 뒤엔 거대한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미국과 대결 강대국들 사이에 낀 대한민국, 우리의 후세 「낀생」은 과연 누가 보살필 건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이어진다.
「낀생」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생은 그 핵심에 선택이란 것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거다. 기성세대완 달리 눈치 보지 않고 생각대로 사는데 걱정하지 말란다. 인생은 그러나 선택의 연속에선 예외가 없다. 「낀생」들은 강조할 거다. 자신들의 뜻대로 산다고. 선택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오히려 낀 나라에선 선택의 기술이 더더욱 필수다. 강대국 사이에 살아남기 위해서다. 「낀생」이라 아무리 자유를 외치고 소신대로 간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거창하지만 우주의 법칙이다. 고작 우주의 4%밖에 아는 게 없는 인간이다. 물론 강조할 거다. 그쯤 안다고. 분명 기성세대완 다르다. 그게 젊은 세대다. 전제로 한 얘기다. 묻는다. 나와 똑같은 사람 본 적 있나? 아주 똑같은 성격은? 있다. 첫사랑의 상대가 그렇다. 하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다름을 안다. 그 뒤? 아는 대로다. 아니, 필름이나 CD는 같은데? 멍청한 얘기다. 내 머리속 천억 개의 뇌세포들 한결같이 다르다. 한 난자에 두 정자가 들어간 일란성(一卵性) 쌍둥이가 똑같다고? 아니다. 자연을 둘러보자. 똑같은 산을 봤던가? 섬은? 강은? 우주에 완벽하게 같은 건 아예 없다. 하늘은 수시로 변한다. 선택의 한계 때문이다.
거창하게 웬 우주 법칙? 종종 인용하곤 했지만 뻥 터진 빅뱅 이후 미시세계의 원자들은 초고속으로 360도 팽창 날아왔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이미 선택된 것, 다만 확률적 가능성 어딘가로 관찰과 동시에 비선형(非線型) 대칭일 가능성뿐이다. 복잡한 얘긴 하지 말자. 똑같은 사람은 우주 아니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얼굴 같은 사람 없는데 하물며 성격? 삶의 취향? 선택의 방식? 단박 알 일이다. 마침 우린 어떤 강대국을 선별할 것인가는 물론,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할 것인가 중차대한 문제에 막 부딪고 있는 형편이다.
쉽게 말하자.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어떤 형용사를 쓰던 완벽한 사람 대체 어디에 있을까? 없다. 비교했을 때 더 선하고 더 악한 사람, 아니면 거짓말과 막말을 더 잘하고 덜 하는지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데 언론은 완벽한 잣대 100점을 기준으로 꼬치꼬치 따지며 그 허점을 노린다. 차이가 거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수선해진다. 0점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다름을 안다. 최대 비호감 선거라고? 87년간 나의 인생으론 늘 그래왔다. 100점과 0점을 선별기준으로 비교하면 다르다. 있지도 않은 100점을 왜 고집할까? 100점 기준 30과 40점은 거기서 거기다. 오히려 한참 모자라긴 마찬가지다. 0점 기준으론 같은 수치라도 전연 감이 다르다. 등급의 차이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나라의 운명 인생의 앞날을 100점 기준으로 정한다면 막장일 거다. 솔직히 말하자. 육법전서 앞에 무결점 시민이 있을까? 우리 모두 말이다. 기록에 있는 사람은 왜일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서?
생각할 일이다. 꼭 알아야 할 일이다. 「낀생」이든 아니든 선택은 필수, 자신만의 완벽한 잣대로 평가하려면 선택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가령 말 바꾸기와 악한 표현은 누가 더 잘하며, 털털한 사람 냄새 이른바 인성은 어느 쪽이 더 센가를 알면 될 뿐이다. 헌법 1조에 있다는 권력,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하니 뒷날 나머지는 세대 불문하고 국민 모두의 깊은 책임감으로 선택된 것으로 족할 것이다. 자신의 잇속이 문제일 순 있다. 나라가 아니라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것, 숨길 수 없는 현실, 솔직하게 인정한 결과라면 자유 그뿐이다. 「나라-국가」는 없는 셈. 하면 왜 투표? 자격이 있는 걸까? 스스로 반문해 볼 일이다.
그러나 이젠 44사이즈의 마른 모델만 허용하는 시대가 아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몸집이 크고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여성들이 속옷만 입고 행복하게 웃는 아름다운 모습들로 광고판에 올랐다. 비누회사 ‘도부’, 그해 매출이 2배로 뛰었단다.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위해 2020년까지 2백만 명에 자기 긍정 교육을 위해서였다.(중앙;분수대-22.02.15.) 신세대의 자기 몸, 자기 정체성 사랑하기를 강조한 것이다. 뭘 의미할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낀생」의 생활방식을 뜻한다. 바로 이를 바탕으로 작동된 선택이라면 거기 더 보탤 말이 필요할까? 떠돌이 소문과 달콤한 사탕에 휘둘리지 않는 정체성이 분명할 진데 말이다. 「낀생」의 특성 그러나 그들만 해당되는 것일까?
블랙홀이 둥글다고 한국학자들이 사진으로 밝혔단다. 원자들의 거동방식을 무척 아는 분들, 그뿐 원자들은 확률적 우주 속에 「얽혀」 중첩된 가운데 인간이 보는 그때만 확인된다. 온전한 선별기준에 따른 민심이라면 결판이 날 것이다. 감성이 아니라 보다 과학적 이성(理性) 편에 서야 한다는 의미다.
「낀생」, 낀 나라나 낀 세대 어디서든 선택은 필수라 했다. 문제의 핵심은 선택의 기준점이 어딘가다. 100점(완벽)을 기준으로? 0점을 바탕으로? 그래서 책 공부를 한다. 땀범벅 경험을 한다. 메타버스 속에서 살아남는 「낀생」들 결코 스스로 「낀생」이라 뻐기진 않는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언론 일부가 강조하는 가상잣대와는 달리 나름 올바른 선별 기준점을 거듭 알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차이점은 무엇일까? 어떤 나라들과 유대감을 맺어야 하느냐는 선택에 달렸다. 대선(大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이 택한 것 마음을 온전하게 다듬어 운영하면 될 것이기에 참과 거짓(기준 시발점 0과 100)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올바른 선택은 어렵다. 선별력(選別力)은 그만큼 진솔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2.02.25.)
참고자료
http://www.braintech.kr/community/board02/?method=view&no=2175&page=7
http://www.braintech.kr/community/board02/?method=view&no=2171&page=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