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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스승과 제자 덧글 0 | 조회 15,715 | 2009-10-03 00:00:00
정동철  



우울한 스승과 제자


1995


 



선의(善意)의 경쟁을 도구로 건강한 마음이 굳세게 남아 있는 곳을 믿고 있었다면 대학이었다. 세상이 변하여 지금은 할말이 있어도 쓰리고 신물을 삼켜야 하는 전직(轉職) 교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아픔은 개인의 일이기에 굳이 헤아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점(零點) 조준(照準)의 대상이 되었던 재벌들을 끼고 돌며 감쌀 수밖에 없는 교수의 이중성(二重星)이 이상하게도 상아탑(象牙塔) 속에 그 꼬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흔들고 있다는 점이 지금은 문제다. 결과 취직 전선 앞에 갖가지 한국적 관행들이 대학 속으로 파고들어 엄숙하게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울화를 삭히지 못해 결국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가고 있다.


이유가 있다. 전임강사(專任講師)가 되는 길을 보자.


그것은 원래 하늘의 별 따기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을 뽑으려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속을 태우는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가령 외국 박사 소지자야 한다던가. 상당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권력의 후광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사제간(師弟間)의 불신과 도덕성이 와해되어 상아탑이 흔들린다고 개탄하는 소리는 아무리 외쳐 보았자 메아리가 없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그 숫한 지식인이 사회에다 무엇을 옮겨놓을 것인지 생각하면 평범한 일이 결코 아닐 것이다. 엉뚱한 곳을 향해 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힘없는 소시민의 건강은 바로 이런 곳에서 출발한다. 비극이다. 대체 무엇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난감하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후학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교수님들까지 이게 뭡니까. 자신들이 가르치고 학위를 주고선 인정(認定)할 수가 없다니.....”


그러고 보니 대학이 이렇게 된지는 오랜 모양이다. 미국 시민권 소유자가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라, 국내에서 바로 그들의 교육을 죽도록 참으며 익힌 제자들은 그들의 모교(미국) 출신자만이 교수 자격이 있다고 고집하는 심각한 모순 속에서 비애를 느낀다. 제자들은 그 분풀이를 자신과 사회에 내뱉고 만다.


다시는 학교가 있는 쪽을 바라보지도 않으리라


말로 가르치기는 쉬워도 몸으로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교육의 쓰레기들은 결국 선의의 시민들이 떠맡아야 한다. 건강한 사제간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선 울분과 우울증을 치료하기란 벅차고 어렵기만 하다.


우울한 사제간의 이 아린 마음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할까?


대학도, 교회도, 그리고 정치가도 토종(土種)들에겐 이방(異邦) 지대일 따름이다. 글로벌 시대에 당연한 일이라고 상다리가 휠 만큼 말 잔치가 요란하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관행이라는 것이 상아탑 위에 미묘한 빗방울을 먹음 고 늘 지프 둥 하니 문제다.


하늘은 쾌청하기만 한데 웬 일인가?


차라리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시원하기라도 하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