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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덧글 0 | 조회 1,023 | 2022-05-01 00:00:00
관리자  

집으로..

2022.05.01.

정신과의사 정동철

 

 

어제 집으로 가는 길 무척 힘들더라고. 운전대를 두 손으로 힘껏 딸의 갓 태어난 손자처럼 뻣튕기며 등받이의 힘을 거꾸로 이용했었으니까, 여차해 핸들에서 손바닥 삐끗하면 날벼락 끝인데? 아침에 여기 병원으로 올 때도 여느 때완 달랐지, 숨이 짧아지고 가슴이 힐긋힐긋 뭉치는 묘한 느낌이었어.

 

결국 집에 도착한 후, 수술 뒤 첫 운전 때처럼 지하에서 올라오는데 10(?) 올라와 노인정 같은 쉼터에서 숨을 드세게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견딜만한 듯 들어왔다. 어제가 아내 생일, 이런 힘든 정황을 말하고 싶진 않아 꿀 먹은 벙어리, 오늘에서야 밝게 밝혔다, 원래 내 성격 어디 가겠나..

지난 일요일 너무 기분이 좋았거든. 너와 며느리, 그렇게 함께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 처음 경험한 것도 아닌데.. 그래 다음날도 아주 잘 지냈어.

한데 화요일 밤 꿈이 어찌나 고약하던지-꿈이야 내가 바라거나 걱정하는 상징성의 문제라, 구지 너에게 물을 필요도 없는데 확인하지 않고는 넘어갈 기분이 아니라 물었던 것일 세, 별일 없었다고.. 하 어수선 천만다행?

 

시발은 이러네.

일요일 어미 생일로 집에 온다기에 뭘 줄까? 앨범과 동영상 필름을 보관하던 장을 모처럼 열어봤지. 거기 바로 그 결혼 앨범을 보게 됐네. 큰 주머니에 뭐가 있나 펴보니 너무 놀라워 감탄,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의연하고 아름다운 역사적 결혼식 앨법이 또 있을까? 해서 너의 처에 전화, 가지고 가면 어떠냐고 했지. 그런다고, 그래 일요일 일식집에서 잠간 한 말 그 아름다운 정감의 앨범, 작품의 주인공은 너희들, 미래의 향방은 너희들의 몫이라 말했던 것, 두 딸 사진들은 또 어떻고,. 한데 대형 사진은 가지고 가지 않았더군.

참고로 말하는데 그날 건넨 사진들을 버리는 권리는 너의 두 딸의 것, 그것만은 잊지 말길 바라네. 마치 우리의 사진(1961년데 나와 아내의 결혼 앨범 함께 줬기에)을 버릴 수 있는 너희들의 자유처럼.. 며느리에 대해 어미와 함께 우린 마음을 정했네. 사돈어른 떠난 지 오래고 안사돈까지 요양원 10여 년, 가족이라곤 누가 있나? 우리 모두는 이미 가족이지만 이젠 며느리이자 딸로 여기기로..

 

길면 혹 또 속 터질라?

차제에 아예 나의 출근을 없애면 어떨까 해서 다시 거론, 자네 말대로 원장은 자신이고 돈도 자신-더러 듣곤 했던 얘기들, 언제 내가 내 병원이고 내 돈이라 강조한 적 있었던가? 의견에 따르기로 하겠네. 봉급이 없더라면 지금처럼 오가는 것이 나에겐 좋긴 한데, 너의 돈을 쓰는 것 즉 봉급이 문제라는 뜻이네. 마음대로 무임금은 법으로 안 된다니 말일세?

 

진료부장 결혼 4년 됐나? 전세든 집 지금은 2배가 넘었다고? 인천시의 주택공사(IS)가 발표한 걸 보면 앞으로 바다를 매립하지 않고선 계획대로 땅이 없어 집짓기 쉽지 않은 형편이라더군, 목표는 한국 제2의 금융도시가 꿈이라던데.., 이미 미국 굴지의 수소회사와 계약, 시간이 걸릴 뿐 그래서 땅값은 오르게 되어있다는 의미, 물론 MZ 세대처럼 대출로 사놓고 되는대로 갚아가다 집값이 확 뛰면 대박, 똑같은 개념의 역발상을 해 본 것일 뿐일세, 대출 이자 대신 지출감소로, 그것도 하자(해야한다)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말했었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지? ! 알아서 하고 있다고.. 하기사 화 없는 인생 어디 있겠나, 짐검다리 돌 사이로 마치 검수완박진행처럼 거침없이 소용돌이치며 거칠게 거품을 내뱉고 흐르는 탄천의 풍경, 거기 앵경 발로 휘청거리며 홀로 서 있는 하얀 늙은이 신세가 뜨니 누굴 탓하겠나.. 분노!?

정신건강 국가책임제-한국 얘기 보호자나 기관장에 의한 입퇴원이 아니라 전문 기관 결정에 따라,란 것 알고 있으리라 보네. 따라서 지성 플랫폼같은 걸 개발하면 어떨까? 의사도 이젠 의료계에만 머물지 않는 시대, 박사과정 끝낸지 이미 오래됐으니 학위는 그쪽으로 돌려보는 것도 주어진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것 뿐 일세. 오로지 정보 차원이네. ‘OTT’‘NETFLIX’가 까라지는 낌새 있지만 일시적(?) 어쩧거나 4차산업 아이디어의 세상 여기 너절한 얘기들 역시 아이디어 차원, 영양가 별로니 그냥 참고하게나! NFT로 떼돈을 버는 현실이니 말일세.. 하명(下命)대로 함세.. 다음 주 의견을 주면? 아니 지금도 상관 없지만..

 

어찌 됐든 밤과 낮은 우리의 희망에 따르지 않지. 번갈아 바뀌고 세상은 원자음악(原子音樂-원자의 이온화, 전자의 가속도, 광자의 고조파 방출)을 응용, 한참 골머리 앓는 코로나 백신으로 생기는 체내 항체 즉 단백질 형성에 항체 음악MIT와 한국의 음원 전공자 사이에서 발표... 너와 나 우리 얘긴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발표됐었다지만.) 하여튼.. 그래선가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다 문득 떠오른 생각. 공기는 늘 함께라 문제가 없는데 물이 문제. 얼마나 어떤 간격으로 줘야 할지 쉽지 않더군. 간단하지도 않고 오히려 어렵기만 할 뿐이더군.

 

민주사회가 잘 돌아가길 바라는 현실에서 누군가가 화분의 물을 적당하게 주면 좋으련만 영 딴판. 말인즉 꽃이 주인이니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꽃 자신도 자신의 요구량을 잘 모르지. 국민, 국민, 하는데 국민의 필요량을 알려면 국민과 늘 함께 살아야 가능성 근처로 가련만 오히려 엉뚱한 길? 겉과 속내가 달라도 너무 달라 속은 기분 괜찮을까? 그놈의 잇속 말일세..

 

장미를 키우는 정원사, 어찌나 아름답고 예쁘게 키우던지 그 비결을 물었단다. 이치는 간단하다. 첫째 장미가 원하는 만큼의 물을 주고, 둘째 역시 장미가 원하는 만큼의 거름을 주고, 셋째 장미가 원하는 만큼의 햇볕을 쪼여 주면 된다는 것. 알겠는데 부부지간이든 부자지간이든 친구지간이든 이웃지간이든 늘 같을 순 없겠고 투박한 정만 있으면 대충 요구량을 알아 비슷한 꽃을 피우겠건만 왜 결과는 늘 다른 쪽일까? 꽃의, 자신의 주문량을 생명의 수학(이언 스튜어트 2011)으로 알긴 어렵겠지만 항상 가까이 있었으면 절절한 정이 통하듯 그렇게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마음이고 그게 진솔함이고 그게 삶일 것이다. 국민 국민 하지만 자신의 잇속이 우선한다는 것, 설마 뉘라 모를 값에..

 

꽃을 국민에 비유하면 그 수준은 어때야 할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볼 때 내용을 잘 읽지 않는 나쁜 버릇이 생겼지. 대신 댓글을 읽곤 해. 놀랍게도 댓글 3개만 보면 얼추 맞춤옷처럼 엇비슷해서지 뻔하다는 생각? 그런 입장과는 다르겠지만 모두가 알아 그렁저렁 비슷하게 헤아리는 마음이면 족하다는 뜻. 너를 보는 시각처럼.. 애처럽고 무섭지만 그럼에도 노상 어른거리니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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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민심이 꽃 피고 지면서 달라진 5월이다.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 날이 갈수록 멀지 않기에-여러 해 전 Home이란 봉안당을 정해두었기에, 힘들더라도 듣고 헤아려 애쓰면 될 일일 것이겠지 생각한다. 자신에게 늘 타이르기도 한다. 나만의 잇속은 너의 허망함에 따른 의욕 상실로 직결된다는 사실, 주름살처럼 마음이 보이는 체경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쉬운 일 결코 아니다. 특히 나름 꽃이라 자칭하는 국민과 통치자의 분별력에서 그럴 것이다. 필경 선인(先人)들은 그래서 노상 야무지게 덕성(德性)을 배워 키우며 살아야 한다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라는가 보다. 특히 따분한 결론이라 여기려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똑똑한 아니 정갈한 국민이었다면 집으로 가기 전 오늘의 난국을 예방할 수 있었을 터이니 더욱 그렇다. (20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