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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정신과병원 덧글 0 | 조회 15,573 | 2009-10-06 00:00:00
정동철  


이동정신과병원


- MPC; Mobile Psychiatric Clinic -


2009.5.5.


 



 



「이동외과병원(MASH)」이 미국육군편제에 있었다.


전선이 수시로 변하는 전쟁터에서 다양한 전상자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위해 외과병원이 한 곳에 고정되어있지 않고 전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전진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전상자가 후방으로 한참 내려오다 치료시기를 노치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이다.


한국전에서 이동외과병원은 그 몫을 단단히 했다. 영화로 나온 「MASH」는 한국인에게 모욕적 성문제가 포함되어 썩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원래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이른바 양색시가 이동외과병원을 따라 움직이는 현상은 부수적 문제로 공급자가 자의로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그 필요성은 이른바 일본의 위안부와는 입장이 엄격하게 다른 것도 이유다.


「이동정신과병원」-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동정신과의원,은 나의 특허권에 해당하는 발상이다. 물론 특허를 낸 것은 아니지만 움직이는 정신과의원이라는 점에서 손색이 없기에 스스로 그렇게 이름 지었다. 아마도 그것은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한 지속될 것이라 다졌었다.


그 내력은 1990년대로 거슬러간다. 정확히 1996년 초부터의 일이다. 워낙 지방강연과 TV출연이 많았던 형편이라 병원-의원이지만, 대표전화 착발신을 이용하여 내가 어디에 있든, 또 공휴일이든 밤이든 환자가 원하면 언제든 접속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치마폭을 떠나지 못하는 어린이처럼 의사에 의존된 환자의 불안을 해소할 뿐 아니라 자살직전에 최후 전화면담을 통해 삶이 갈라지는 긴박한 응급사태도 대처할 수 있으리만큼 활용도가 컸던 탓이다. 경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자던 때였다.


 


254명을 태운 대한항공 801편 보잉 747-300B 여객기가 97년 8월 16일 새벽 0시 55분 괌 아가나 공항 남쪽 4.8km 밀림 지역 ‘나비나 힐’에 추락 226명이 사망하고 28명만 생존했던 사고가 있던 밤이다. 자살을 결심한 미지의 전화를 받고 밤새 상담을 해주었다. 계기가 되어 정신과의사의 25시라는 글을 쓰게 되었고 그것은 박달회 의사수필집에 실렸다.


 


다시 예상외의 사건과 더불어 전화상담은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지속되는 사태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2008.12.1.부터 2009.7.15.일까지 강릉의 한 정신과전문병원에서 진료를 위해 휴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도 그렇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선 커다란 사건이었다. 지주를 잃어버리게 된 그들은 철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분명히 다시 오시긴 하는 겁니까? 어떡하죠? 불안합니다. 잠을 못자겠습니다. 강릉으로 찾아가도 되죠? 선생님이 없으면 죽어요.......”


방법은 「전화상담」이었다. 90년도 후반에 시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물론 모두가 유료는 아니었다. 90년대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무료였다. 그래서 ⌜정신과의사의 25시⌟였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없는 나의 의원간판을 보고 안도하거나, 심지언 복도로 올라와 의원이름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던 환자들의 심정, 내가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가상적 존재감을 느끼게 하였고 동시에 희망이 있음을 시사(示唆)하는 뜻이었다.


문제는 제한된 시간에 과연 모두 소화할 수 있을 형편인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처방전을 뽑아주고, 인근 정신과 전문의들을 소개해주며 미리 시험기간을 가동했다. 떠나기 전 2~3개월간의 적응기를 둔 셈이다. 나의 처방을 소화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처방권은 의사특유의 권한이며 권리이므로 똑 같은 것을 강요할 수는 없어, 참고해주기를 바라는 범위 내에서였다. 환자들은 더욱 불안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동정신과병원⌟은 한참 후에 스스로 명명한 것이다.


강릉에서 나의 근무조건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였다. 외래만 담당한다는 단서도 붙었다. 고백하지만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은퇴의 수순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일 중독증에 해당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강릉행에 적극 찬성한 것은 아내였다. 서울에 있는 한 결코 스스로 병원 문을 닫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일이 없어 정서불안에 이르는 중독환자는 아니라 해도 쉰다는 것을 죄악시하는 입장은 사실이었다. 아내의 입장과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그래서 1년간의 계약에 서명을 했고, 막상 주말마다 서울로 오가는 사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와 주말여행을 하는 격이 되었고, 귀에 꽂은 핸드폰은 환자와의 공백을 매울 수 있었다. 우린 내심 1년을 더 있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정도로 발전했다. 「이동정신과병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의료보험법상 문제가 있었다. 무료라면 환자유치를 위한 불공정법에 저촉이 되고, 유료라면 아예 「전화상담」자체가 위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양질의 맞춤치료는 의료보험법상 늘 감시의 대상이 된다. PD의 제작권은 고유의 권한으로 인정된다. 의사의 처방권은 다르다. 의료보험당국에선 기성복으로 유도하여 그 범위를 벗어나면 곧 죄악시하는 현실이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과 강릉, 2시간 반의 시간을 버스든 손수운전이든 갔다왔다하면서 그나마 「이동정신과병원」의 행보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로 자위를 했다. 먼 거리라 공정거래법상 환자유치라는 덫은 적용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따지고 보면 인터넷시대에 글보다 「전화상담」이라는 것은 기왕에 직접진료를 통해 알고 있던 환자와의 관계에서 처방권처럼 제한한다는 것 자체가 해괴한 전근대적 경직된 사고방식일 것이다. 아니면 탈피할 수 없는 고질적 우리의 관료문화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이 다니다 보니 길이 생겼고, 서로 말로 의견을 교환하다 보니 문법이 생겼지만, 지금은 선행된 경험적 삶의 본질보다 법만이 우선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팔 개월 만에 서울로 귀환하니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정신과의사인 아들이 의원급에서 병원급으로 격상이전하게 되어 나의 의원은 폐업을 하게 되고 같은 수도권으로 오면서 「이동정신과병원」의 법적 문제는 정면으로 걸림돌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불공정 환자유치라는 법적문제가 그것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전국에 퍼져있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상담은 이어진다. 외국적의 환자는 감시의 대상은 아니다. 의료보험 자체가 적용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나름의 사정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경우 의사가 받아야할 수가는 엄격하게 제한되어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활보호대상자에 해당하는 월정수가보다 더 낮은 수가를 받아야하는 모순이 불거지는 실정이다. 이를 어기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법인 것이다.



의료사회주의라는 현실에서 의권(醫權)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에다 추풍낙엽과 같다. 이상한 일은 그럼에도 의사지망생은 초고득점자에 한해 가능한 현실은 실로 역설적이다.


“이 불쌍한 놈들, 그 좋은 머리를 가지고 왜 의과대학을 와서 사서 고생들을 하지, 멍청한 놈들!!!”


의과대학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종종 던지는 푸념이다. 이유가 있다. 앞의 현실적 사연과 같은 것들이 그 연유란 뜻이다.


당연히 「이동정신병원」은 그래서 접어야 했다.


울며불며 원망의 소리 귓가에 지워지지 않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왜 이렇게 내치시는 거죠? 선생님 없으면 죽어요. 유명한 분들을 다 찾았지만 선생님밖에 없어요. 제발 내치지 말아주세요, 네?”


전화속의 울먹임이 애절하지만 같은 수도권으로 온 이상 명분을 찾을 길이 없다.


“내 나이 75세요. 병이라도 들었다면 어쩌려고.... 대비를 하셔야지... 가까운 정신과의사를 찾아가면 그 의사에게 전화로 내력을 알려줄 테니..... ”


막 무관이다. 소용없다며 전화를 끊으려 하지 않는다. 전화를 없애면 될 일이다. 그건 차마 할 수 없다는 것이 의사의 마음이다.


기왕의 환자뿐 아니라 모르는 환자들 또한 전화는 노상 이어지고 있다.


“병원이죠? 예약하려고요. 불안하고 죽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요........, 언제 예약이 가능한가요?”


진료를 할 수 없게 된 사정을 설명하지만 낙담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은 편할 수가 없다.


왜 모질수가 없는 걸까.............. 의사가 뭔데....... 전화 하나 없애지를 못하다니..... 20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