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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고통, 그리고 번민 덧글 0 | 조회 15,336 | 2009-12-06 00:00:00
정동철  


의사의 고통, 그리고 번민


09.12.5.




술잔이 놓여있었다.


뭔가 갸웃했다. 밤 2시쯤이다. 빈 캔 맥주통도 거기에 아무렇게 놓여있었다. 일상과는 아주 다른 원룸의 [ㄷ]자 형 싱크대테이블에 놓여있던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다. 잠을 청했다. 평소와는 달리 쉽게 잠이 들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12시 몇 분인가 들어온 아들의 사생활을 애써 외면하겠다는 심지로 그랬을 것이다.


핸드폰에서 여섯시라는 말이 들렸을 때 바로 방에서 나왔다. 우유를 한잔 따랐다. 술잔에 다시 시선이 쏠렸다. 술병은 없고 껍데기를 보니 위스키였다. 얼마를 마셨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맥주까지 곁들였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침대 위 옆으로 누어진 아들의 노곤한 모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열 몇 평 원룸, 행여 깰까 화장실로 들어갔다. 


- 뭔 일이 있었을까, 웬일이지? -


어제 ⌜조선옥⌟-을지로 3가 군의관시절에도 갔었던 갈비 집, 에서 부지점장과 행원, 그리고 컨설팅 곽이사와 함께 마시게 된 술자리에서도 맥주만을 고집했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소주를 포함해 독한 술은 거의 피하는 것이 그의 습성이었기에 의문은 좌변기에 앉아서도 요리조리 이어졌다.


- 혹시 어제 함께 탄 그녀와 뭔 일이라도....... 아니지 그건 아닐 거야. 그런 친구는 아니니까....-


의문은 갔다왔다했다.


겨우 염소 똥 같은 덩어리를 남기고 세수를 하자 이내 왼쪽 코에서 피가 흘렀다. 종종 있는 일이다. 두루마리 휴지 한쪽을 익숙하게 잡아채어 콧구멍을 틀어막았다. 




주말이라 부쩍 즐겨듣는 음악을 듣던 중, 아들의 전화가 왔다. 창밖의 눈이 거의 수평으로 퍼붓는 사이사이로 아주 여유롭고 평온한 목소리는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일산에 가있던 나의 빈자리를 반갑게 채웠다. 어머니는 좀 어떠하신 지와 더불어 병원엔 별일이 없다는 보고-그제 있었던 일 때문에, 와 함께 또 입원되어 환자가 108명이 됐다는 것이다. 115명을 기점으로 ⌜대기환자제도⌟로 모드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나누는 사이 눈발은 더욱 거세지고 영화음악은 마음을 애잔하게 흔들고 있었다. 대단하다했다. 긴장을 풀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좀 쉬어가자는 말을 해주었다. 사실 조만간 환자들은 overflow-넘치게 될 것이므로 불가피하니 너무 애쓰지 말자고 했다. 무슨 얘기냐고 반문할 의문들이 있을 것이다. 정신과의사 둘이 볼 수 있는 입원환자는 의료보험법상 12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넘기면 영업정지라는 제제를 받을 뿐 아니라 벌금도 내야한다. 외래환자 세 명은 입원환자 한명으로 환산하기에 115명으로 고정할 때 외래환자는 15명 이상 보면 안 된다. 역시 엄격한 처벌을 피할 수가 없다. 진료거부라는 민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착잡하다. 때에 창밖의 눈이 별안간 변덕스럽게 햇볕으로 변했다. 그것도 쨍쨍하게 밝아졌다. 마침 만 1년에 다가선 한 여인의 집안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와 내년연초에 그 유명한 도서출판사 경영권을 다시 찾기 위한 전략에 대한 방안을 나누며 떠났던 환자의 푹은 했던 마음을 음미할 때 파란 하늘과 모두가 잘 어우러졌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눈의 피곤을 제외하고는 불편함이 없는 나의 집, 아주 조용하다. 베란다의 꽃들이 환하다. 그제 있었던 놀람 때문에 시작된 얘기는 그래서 아들의 보고 전으로 다시 계속 이어간다. 




아들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모닝 빵과 우유를 마신 후 냉장고에 넣었다. 틀어막았던 콧구멍의 휴지를 녀석이 볼 새라 빼어 변기에 넣었다. 빨간 핏물이 번졌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아직 어둡고 조용한 찻길에서 수색으로 향하는 큰 길로 좌회전을 하기 전이지 싶다.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해야 할 말이라고 다져두었었다.


“기본적으로 너의 사생활에 관여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하지도 않겠지만...”


쉼표를 얼마나 두었는지 길지는 않았지만 이어갔다.


“내가 탈 때는 괜찮지만, 차에 태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선의의 경우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술께나 마셨던 모양이더군. 방황도 꽤 했다던데..........”


새로 들어온 조무사얘기를 하는데 뚝 잘라먹으며 하는 말, 아니 내뱉는 말,


“어제 알코올 환자가 갔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통나무를 자르듯 내뱉는 말에 의문을 달자 며칠 전 입원했던 알코올환자가 술로 시작된 간경화에 의한 hepatic coma-간기능장애에 의한 혼수상태,  로 죽었다는 것이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잠시 소생했다가 결국 떴다는 얘기다. 철렁했다. 그래 어찌됐는지 묻자 잘 됐다는 대답이다. 


입원당시 1주일이 고비라고 했고, CCTV로 재생하다보니 명명백백하게 사실이 들어나 CCTV가 좋더라는 얘기도 곁들였다. 헬스클럽에 모처럼 가서 운동복으로 막 갈아입고 준비할 무렵 응급전화로 달려와 취한 조치가 모두 재생된 것이다. 경찰은 물론 가족도 병사(病死)를 인정하고 장례장으로 옮겼고, 결국 수고했다는 가족들의 인사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안전사고예방을 위해 얼마나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을 처들이며 애썼던가. 변사(變死)가 아니라-가신 분을 욕되게 할 수 있는, 다행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이다. 50대의 그 남자는 술의 병폐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결과 만성적 자살행위와 같은 형세가 되었다. 그 가족들까지 그렇게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액땜을 했구나.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사건, 이렇게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운이지, 액땜치고는 정말 전화위복이구나....... 그토록 조심했던 긴장을 더 하게 됐으니......... 세상 얼마나 험한가. 생떼가 거의 상식인데........ 그야 우리가 늘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지만......”




술잔이 놓여있었던 이유가 그제서 풀렸다.


다른 병원응급실에서 거절당하고 온 환자, 진료거부를 할 수 없어 받았고, 충분히 가족에게 문제점을 설명했을 뿐 아니라 주의의무를 다했지만 결과가 죽음으로 이어졌을 때, 그것이 법적 하자는 없다 해도 의사의 아픔은 사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기경에 이른다.


나, 아버지와 어쩌면 똑 같은 길을 밟아 가고 있을까. 


환자가 죽었을 때 이유야 어찌되었던 의사인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며 자책하는 나머지 선술집 둥그레 판에 앉아 소금을 안주삼아 입안에 처넣던 그 옛날의 소주, 이렇게 했었더라면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참담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던 때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 자식 그럼 함께 한잔 하자고 하지.... -


아버지가 걱정할까봐 그러지 못했다는 나중의 얘기였지만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다. 같은 정신과의사인 아버지와 바로 그런 뜻에서 같을 수밖에 없었던가 보다. 그러고 보니 닮은꼴은 또 있었다.


저녁을 대체로 junk food-간단히 해결하려고, 로 때운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처음 내가 그의 오피스텔에서 자기위해 가던 날 예외적으로 왜식집에서 정식을 시켰다. 굴과 같은 것은 피하라했다. 맛이 있는데 왜요 라고 한다거나, 간이식당에서 돈까스 같은 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그렇다. 병원으로 격상 개원한다고 반쪽이 된데다 아침을 거르는 습관, 다행히 저녁 운동은 거의 빼먹지 않을 정도로 중독이 된 상태라 체격은 매우 날씬하고 멋지지만 그런 식으로 저녁을 넘긴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물론 당사자가 모를 리 없다.


나의 종로시대, 거의 35년 전부터 25년간 역시 짜장면 아니면 포장마차에 걸터앉아 200원짜리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던 때가 다반사였다는 사실이 TV화면에 생생하게 재현되듯 어쩌면 부전자전(父傳子傳)은 이렇게 닮았을까 웃어본다. 유전자 DNA 때문일까. 아니면 의사라는 직업 때문일까. 따져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문제의 닮은꼴을 만든 주범이라 여겼다.




멱살을 잡히거나, 가운을 찢기며 온갖 수산을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의사, 사람을 살리라했지 죽이라했냐며 고성(高聲)불패(不敗)의 난폭한 시대의 의사는 잘해봤자 본전인 셈이다. 특히 정신과의사는 그렇다. 문제를 해결해주었다손 치더라도 그건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린 결과였다고 본다. 뒤집어 말하면 잘못되었을 경우 누명을 흠뻑 뒤집어써도 할말이 없다는 얘기다. 외과의사는 수술이란 거창한 모습으로 극적효과를 연출할 수 있어 감사의 고개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감사할 경우가 있지만 정신과의사에겐 그럴만한 꺼리가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리 고통과 법과 싸워야하는 번민이 닮았다 해도 진료거부라는 또 다른 덫으로부터 해방될 길이 없는 의사에겐 술잔으로 자책감을 달래는 길 이상의 다른 방도가 없다. 닮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피커에서 Dying Young(Kenny G, 젊음이여 안녕의 타이틀 음악),이 심장을 에인다. 


- 이렇게 해서 의사의 젊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겠지.......... 언제 우리가 잘 때 자고, 놀 때 놀며 의사가 되었던가,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길인걸 어쩌겠나. 최선을 다 하자꾸나.... - 


나와 아들의 얘기지만 이것은 의사들 모두의 얘기이기도 하다. 




주)


- 원래 사람이 죽을 때는 병원을 찾아 죽는 것이 상식이다. 긴박한 상황에 병원응급실이 생사의 갈림길을 달리할 뿐이다. 아프고 급하지 않은데 입원할 사람은 없다. 아픈 사람은 생사의 경계선에서 작두를 타고 있는 격이라 의사 역시 같은 입장이다. “병원에서 사람 고치라했지 죽이라했느냐!”는 항의는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예시당초 병원에 온 환자 모두가 온전히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이 ⌜의술의 현실⌟이라면 할말은 없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