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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그리고 돈과 지식 덧글 0 | 조회 15,703 | 2010-03-21 00:00:00
정동철  



돈과 知識


- 1979 -




法頂스님이 떠나면서 자신의 저서는 절판하라함과 함께, 불타는 장작 위 한줌 재속의 참 舍利가 무엇인가라는 話頭를 우리에게 남겼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책은 15만원에 거래되고 있음에 ⌜無所有⌟는 三十數年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때에 그분의 글과 함께 실렸던 책 ⌜돈 그리고 智慧⌟(사방사, 서울, 1979-절판됨)속의 


나의 수필 ⌜돈과 知識⌟을 생각하게 된다. 비할 바 없어 자신에게 물어본다. 


변한 것은 없다. 묵은 된장처럼 시간의 무게를 느낄 뿐이다. 그 무게 힘들어 얼마나 더 짊어지고 가야할지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숙제로 남는다.  


스스로 다시 음미해 보려 옮겨본다.(2010.3.)   






     1




은행가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인간을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돈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과, 전혀 갖지 못한 사람, 그리고 약간 갖고 있는 사람.⌟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보존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유일의 관심사는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 돈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얻기를 원한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현 질서를 파괴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질서를 하나 세우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세 번째 종류의 사람들, 즉 돈을 약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그 약간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회질서를 보존한다. 동시에 그들이 아직 갖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사회질서를 뒤엎으려 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이 관념상 파괴하는 것을 사실상 보존하고 있고 그들이 보존하는 체하는 것을 사실상 파괴하고 있다.⌟


싸르트르가 쓴 희곡 ⌜惡魔의 善神(1951)⌟에서 인용한 말이다.






     2




현대 경제이론이 어떻게 되어있든,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 비해 물량이 모자라는 것을 기술적으로 고루 공감이 가게 하는 방법은 그리 쉬운 게 아닐게다. 따라서 재분배의 힘겹고 마음 아픈 이론들이 그럴 법하게 여기저기 강요되고 있는가 싶다.


수입이 가계부에 붉은 글씨로 허덕이는 대부분의 연탄재 인생생활은 내일을 향하는 의지로 생의 뜻을 읽는다. 


흑자인생은 또 그 나름대로 기부와 희사를 아끼지 않고 사회사업을 하여 장학생을 키워 보람되게 살려고 애쓰기 때문에 먹는 밥 세끼는 같아도 즐거움이 있다. 가진 자와 없는 사람의 삶이다.


내가 소속됐던 어떤 모임에서는 박수 한 번 칠 때마다 백 원을 내야하는 곳이 있었다. 마치 섯다꾼처럼 돈지갑을 아예 식탁위에 내보이고 한 푼씩 성금바구니에 집어던진다. 아무도 부담 없이 그리곤 누군가가 제의를 하면 또 오백 원, 천원 포커 판의 레이스같이 바구니에 돈은 수북해 지기 마련이다.    


재분배의 한 형식이다. 능력이 얼마이든 하여간 누구 엔가로 돌려 보내진다. 그래서 좋다. 바람직한 인간의 두뇌과시다. 같이 살아야하는 운명적 현실을 그런대로 알고 있는데서 비롯된 착상이다.


재분배가 제도적으로 명문화 돼 있는 것은 물론 세금이다. 누진세를 바탕으로 한 종합소득세가 바로 그것이다. 좋은 제도다.


그러나 적자인생은 의욕으로 살고, 흑자인생은 재분배의 기쁨으로 산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재분배해야 할까?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주제 넘는 잘못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에겐 돈이 없다. 나에겐 권력이 없다. 나에겐 완력도 없는 것이다.






     3




나는 정치가가 아니어서인지 지미 카터보다는 그의 어머니에 관심이 쏠린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라는 카터의 자서전 속에 그의 어머니 릴리안여사가 하루 12시간씩 간호원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후 70고령까지 인도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일해 온 기록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일한다는 것은 그만한 대가가 없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대가만 염두에 두게 되면 실상 권태롭고, 힘겹고, 짜증스럽고, 비참한 기분에 휩싸이기 싶상이다. 그런데 정말 일에 즐거움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일에 임하면 철저하게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거의 일한다는 것이 하나의 운명적인 것처럼 그렇게 신들린 사람 말이다. 


거머리에 피를 빨리며 모를 심는 농부의 순간에, 그 수확에 의한 돈이 매달리진 않는다.


묵직한 선반 회전 추를 따라 불꽃 튀는 쇠 깎임을 쫓는 公員의 뜨거운 순간이 또한 돈으로 아물거려지지 않는다.


환자의 생명을 떠받든 수술실 의사의 마음이 돈으로 저울질 되지 않으며, 정신요법적 대화에서 또한 일일이 돈이 측정되는 것도 아니다.


주부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면서 그 노동력이 몇 백, 몇 천원에 해당될 것이라 가늠한다면 벌써 일의 맛을 송두리째 빼앗기듯 우리들 대부분은 따라서 오로지 일에 열중하고 산다.


  잠에서 꿈을 꾸니 인생은 기쁨,


  불현듯 눈을 떠 바라보니 인생은 의무!


  일어나 행동하니 의무는 곧 즐거움이라.


타골의 시 또한 조용히 일의 의미를, 인생의 뜻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러나 정말 필요한 일을 주고, 그것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지금 우리가 마음 편히 살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4




  나는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는 것일까?


  나는 재분배의 능력이 없는 것일까?


  나는 과연 일의 의미를 터득했을까?


아직도 나는 돈을 모른다. 때로는 추악하다고 분통을 터뜨리다가도 또 때로는 파안대소 하늘을 날 듯 돈의 위력을 만끽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지상목표가 아닌 이상, 思想의 벽을 넘어서까지 공통의 목표가 되어 전쟁이 불붙는 형국이니 개인의 생리가 달라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당연한 변덕일 수밖에 없다. 돈의 선악을 따진다는 것은 그러므로 아주 어리석은 일에 불과할 따름이다.


문제는 돈의 행방과 질서의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며 그 속에 숨쉬는 우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미카엘 뢰비는 말한다.


⌜지식인, 작가, 시인, 학자 등은 모두 質的 가치에 지배되는 세계에서 산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양적가치, 다시 말해서 교환가치에 엄격히 지배된다. 한 화가에게 있어서, 한 장의 그림이란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빛나며, 어떤 이야기인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게 있어서 이것은 우선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물질 그것뿐이다. 그것은 질적 가치와 양적 가치와의 대립이며, 또 논리적 혹은 미학적 가치와 돈과의 대립이다. 모든 문화적 자산, 감정, 도덕적 원칙, 미학적 정서 등이 시장에서 적정가격하에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락된다면 바로 이와 같은 모든 위협에 지식인은 반항하게 되는 것이다.⌟


싸르트르에 의하면 지식인은 지배계층과 하층인 사이에 끼어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은 애매한 중간층이라 했다. 가진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중간 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빼앗기를 원치 않으면서 더 갖기를 갈구하는 그런 중간층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면 큰일이다.


터득한 일을 통해, 대중의 구체적 보편을 알고, 재분배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참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5




모름지기 나는 일을 하리라, 이유를 묻지 않고 일을 하리라.


두 가지, 세 가지가 함께 밀려와도 또한 일을 하리라. 진료라는 예술의 분배가 구체적 보편성의 사랑과 더불어 아직 나에겐 고갈됨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