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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덧글 0 | 조회 17,198 | 2010-05-21 00:00:00
정동철  


정신병동의 노래-17




편 견(偏 見)


2010.4.12.


정 동 철




「우동 한 그릇」, 누구 읽어보신 분 있나요?


창밖의 노란 개나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봄의 저 정겨운 풍경, 밖은 그러나 겨울처럼 찹니다. 여긴 천국 같네요. 점심 후 졸음이 밀려올까 시간을 3시로 늦추었습니다. 점심은 좋았나요?




오늘의 주제는 「편견(偏見)」으로 합니다.


편견, 편견을 경험하지 않은 분 혹시 있나요? 많다고요. 이해합니다. 여기에 있다는 자체가 그렇다는 뜻 알겠습니다. 여기에 오기 전 일상에서의 얘기입니다. 있어도 사실 잘 모르고 지났던 것이 편견이 아니었을까요. 단언하지만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려는 나 자신 역시 편견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지금부터 말하려는 내용 중에도 편견이 있을 수 있지 싶습니다. 감안해서 들었으면 합니다. 어릴 적 얘기입니다. 시각장애인-장님을 보고 재수 없다며 눈썹하나를 뽑아 돌과 돌 사이에 끼어 넣고는 누군가 그걸 차고 지나가면 옴 붙었던 나의 재수가 옮겨간다고 믿고 있었던 어린시절 그것이 사실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입니다. 어쩜 중요한 것은 편견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뒤늦게라도 그걸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얘기 하나를 우선 소개합니다.


「우동 한 그릇」, 누구 읽어보았겠죠? 네, 역시 글을 쓰시는 분이라 다르군요. 다시 읽는다 생각하고 들으면 좋겠군요.「우동 한 그릇」에 대한 일본의 동화를 전하렵니다.


일본 북해도의 한 우동 집-북해정이 무대입니다.


손님들이 북적거리다 거의 문을 닫을 무렵 허름한 두 소년과 그 뒤의 역시 초췌한 여인이 문을 열고 묻습니다.


“우동을 시켜도 될까요?”


“... 네, 되지요. 들어오세요.”


“우동 한 그릇을 시키려는데 될 수 있을까요?”


섣달 그믐날 우리들은 잠을 자면 어떻다고 하죠?-여기저기서 눈썹이 하얗게 쉰다 했다. 일본에선 12월31일 저녁 우동을 먹어야하는 습관이 있답니다. 동짓날 팥죽 먹듯 그들의 풍습이죠. 손님들이 겨울 한복판에서 따끈한 몸으로 떠난 후 문을 닫아야할 시간 10시30분에 이 초라한 손님들, 게다가 우동 한 그릇을 시켜도 되느냐는 질문에 여러분이라면 그 기분이 어땠을까요. 무척 피곤한 형편이라 조금은 껄끄러웠을지도 모르죠. 나도 그랬을 것입니다. 북해정 주인 아줌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혼쾌히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주방을 향해, “우동 한 그릇이요!”


내외가 운영하는 조그만 우동 집 주방의 남편은 그들의 행색을 보고 알았다며 한 그릇에 반을 더 말았습니다. 손님들은 맛있게 나누어먹고 나섰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깍듯한 인사를 나누며 문은 닫혔습니다.


어떤 느낌이죠?


한해가 흘렀습니다. 그믐날 같은 시간에 그들 세모자는 다시 찾았습니다.


“우동 한 그릇을 시켜도 될까요?”


“그럼요. 앉으세요.” 그리곤 역시 주방을 향해 외쳤습니다.


주방 안에 있던 아저씨는 아내를 불러 세 그릇 분을 말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부인은 그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금방 알아차리게 되고 미안한 마음과 혹시 마음이 상할지도 모르니 전과 같이 하는 게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다음엔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같은 신년인사를 나누고 다시 1년이 지났습니다.


북해정은 커지고 우동 값도 올랐습니다. 주인 부부는 궁리를 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준비한 차림표를 바꿨습니다. 오른 값을 지우고 그들을 생각하여 전과 같은 150엔으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꼭 오리라 여겼던 것이죠.


12월31일 10시 30분 북해정의 문은 다시 열렸습니다. 거기에 그 삼모자가 있었습니다. 친절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은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동 두 그릇을 시켜도 될까요?”


“물론이죠. 곧 말아 올리겠습니다.”


이번엔 아저씨가 삼인 분의 우동을 말았습니다. 세모자는 아주 맛있게 먹으며 서로 얘기를 나눕니다.


“애들아 참 고맙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진 빚을 이제 다 갚았단다. 형이 신문배달을 하고 이런저런 궂은일을 한 덕에 이제 엄마는 마음이 편하게 되었지...”


“어머니! 어머니와 동생의 힘이 더 컸지요. 동생이 집안일을 돕지 않았으면 엄마와 저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거야요. 학교에서 글쓰기에 당선도 됐잖아요. 커서 북해정과 같은 우동 집을 만들어 그 주인이 되고 싶었다는 글, 이곳 우동이 가장 맛이 있다고 쓴 글말입니다. 그 글로 상을 받은 동생을 칭찬할 일이죠.”


홀에 있던 아주머니와 주방의 아저씨는 글썽거리게 된 눈을 훔쳤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인가요? 모두가 마음마다 같지는 않아도 하얀 눈이 쌓인 겨울의 우동, 여러 가지 생각이 나겠죠? 장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하필 한해의 마지막 손님이 너무 초라해 재수가 없다고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여러분들은 그 아줌마와 아저씨 같은 느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잠시 다른 얘기로 옮길게요.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참 잘 살죠. 음식재료를 살 때나 시장에서 물건을 찾을 때 국산품을 강조합니다. 한우, 우리 쌀, 우리 배추, 우리고춧가루를 비롯해 전자제품도 같은 상표지만 OEM방식으로 동남에서 만든 것보다 비싸지만 한국에서 만든 것을 찾습니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엔 ⌜메이드 인 유에스⌝만 찾았죠. 청계천 5가에선 꿀꿀이죽도 팔았으니까요.-누군가가 말했다. 돼지 먹이 말이죠?- 아닙니다. 여러분이 먹다 남은 잔밥, 소위 짬빵이란 것이 미군부대에서 나와 부글부글 끓는 냄새와 함께 우리들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를 위해 팔렸죠. 돼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돼지에도 주지 못합니다. 위생적으로 키워야 하니까요. 


참 잘 삽니다. 그러나 우린 잘 사는 만큼 행복하고 기쁜가요? 부모, 형제, 이웃과 사이들, 모두가 즐겁기만 할까요? 


마침 불행한 일이 터졌습니다. 지난달(3월26일) 천안함이 폭발되고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실종되었습니다. 이제 거의 죽음으로 변했지만 가족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회는 온통 그 모든 책임을 군 지휘부를 향해 울분을 터트리기에 급급합니다. 함대사령부가 점령될 지경에 이르렀고 사령관은 멱살을 잡히는 형국입니다. 군함은 여객선이나 유람선은 아니겠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국방작전 중의 전함이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살려내라는 것뿐입니다. 전선에 나간 군인이 작전 중에 전사했을 때 살려내라고 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격입니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 그 누가 헤아리겠습니까. 당연하겠죠. 슬픔과는 다르게 또 다른 곳의 날선 항의는 혹시 편견의 결과는 아닐까요? 유람하다 실종되거나 여객선의 파손으로 생사가 갈렸을 때처럼 그렇게 군승조언의 역할을 유람객처럼 치부해도 되겠느냐는 뜻입니다. 국민의 삼대의무가 무엇이라 하죠?-사방에서 국방, 교육, 세금이라고 했다. 한데 그들의 신성한 의무에 관한 전황은 알권리 앞에서 급기야 북한과 대치한 작전상의 비밀들을 깡그리 벗어야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고성(高聲)불패(不敗)라는 사회적 성격에 따른 편견의 결과는 아닐 넌지요?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때다 싶을 정도로 역시 고성불패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올바른 판단일까요? 시각장애인을 보고 재수를 넘기려거나 마지막손님이나 첫손님의 행색을 보고 소금을 뿌린다면 그건 참다운 사람에 대한 대접이 아니라, 편견에 의한 것처럼 그때그때의 사회적 성격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기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에 어떤 기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생존 병사의 원대복귀가 결정되자 그들을 위해 전문가의견을 취재하겠다는 것입니다. 직감적으로 그 의도를 알았습니다. ⌜외상성 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을 이렇게 빨리 바다로 되돌려 보내도 되느냐는 국방부방침을 꼬집으려했던 것입니다. 북한의 어떤 행동도 의심되는 것이 없는 터에 국방부자체의 문제점을 피하려는 태도를 부각하여 결국 북한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싶었던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언론에 좀 까다로운 편입니다. 거의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리 다짐을 받기로 했습니다.




조금 나와 언론에 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기자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확인한 후 협조는 하겠지만 만의 하나 나의 말을 회사 측의 의도대로 편집하면 그 책임을 강력하게 묻겠다고 했으며 그래도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지금까지 매우 까다로웠던 나의 입장을 곁들여 설명해주었습니다.


여기저기 공중파방송 출연이 잦았던 어느 날 고정프로를 녹화하고 나오는데 PD가 잡았습니다. 뉴스시간에 나갈 해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리를 알고 있었기에 얼마짜리냐-시간의 길이, 고 물었습니다. 2~3분이라는 것입니다. 거짓말이죠. 15초를 넘기지 못하는 뉴스의 특성을 알고 있는 내가 물은 것은 길게 하지 않겠다는 암시였습니다. 결국 30초로 끝냅니다. 결국 칼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고 그 의미는 그들의 마음대로 편집을 할 수 없게 했다는 뜻입니다. 내용이 길어야 편집을 하죠. 원하는 것을 짧게 그것도 아무리 바꾸거나 삭제해도 내 의도와 달라질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나의 언론관을 설명하고 그 기자에게 다짐한 것입니다. 원래 내키지 않았지만 사안이 그렇지 않아 그제서야 응했습니다.


내가 밝힌 핵심은 제발 언론을 포함해 지켜보며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지금 죄인과 같은 심정인 터라 무엇을 묻고 확인하거나 추궁하여 알아내려 한다면 그 자체가 상처가 될 것이기에 이념을 떠나 냉정하기를 바란다는 토까지 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쪽 게시판에 붙어있는 나의 글입니다. 그 신문 원본의 복사물입니다. 본 분도 있고 읽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사이의 이념적 구도는 언제나 노동자는 선이고 주인은 악으로 표현됩니다. 장교는 살았고 실종자는 모두 사병입니다. 군 수뇌부는 나쁘고 병사는 착하다는 공식이 그대로 전염되어 불을 지르게 됐다는 것, 국민의 의무와 관계된 군인특유의 임무를 노사와 같은 차원의 시각으로 재단한다면 결국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 의사와 나의 아들 역시 여러분의 입장에선 악의 집단이거나 죄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니까요. 그 판단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편견은 다시 편견을 낳아 심리적 원자폭탄과 같은 연쇄반응에 의한 파괴력으로 나라의 존재자체가 위협받기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원대복귀를 하는 병사들에게 사건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자신들의 이념에 맞추기 위해 끈질기게 묻고 따지기 시작했을 때 ⌜외상성 증후군⌝의 문제는 결코 만만한 것으로 머물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기자로부터 까다롭게 다짐을 받은 연유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나의 의도대로 됐습니다. ‘당부 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나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했습니다. 




「우동 한 그릇」의 얘기로 다시 갑니다.


그 후 북해정의 주인이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3년, 5년 그러나 북해정의 내부 인테리어가 바뀌게 될 때 그 주인 부부는 그들이 앉았던 테이블 만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사람들이 연유를 알게 되자 ⌜행운의 2번 테이블⌝로 불리어 유명해졌습니다. 젊은이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손님들은 거기에 앉는 것을 행운이라 여긴 거죠. 


십년이 지난 그믐날 10시30분 젊은 신사 두 사람이 들어섰습니다. 우동을 시켜도 되겠냐고 했습니다. 망설이며 머뭇거리다 그들의 뒤에 서있는 여인을 보자 바로 기다리던 삼모자임을 알았습니다. 어릴 때 본 소년들은 장성하여 알 수 없었지만 그 어머니는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던 것이죠. 


“우동 세 그릇을 시키려는데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하다며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척을 맞이하듯 기뻐했습니다. 세모자는 자기들끼리 말했습니다.


“우리는 생애 가장 번듯한 만찬을 오늘 하는 셈이다.” 


알고 보니 큰 아들은 의사, 작은 아들은 은행원이 되었습니다. 


청해정 아줌마와 아저씨는 너무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죠. ⌜우동 한 그릇⌝의 끝입니다.




1982년 일본 국회예산위원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이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감동적이죠? 어떤가요? 이런 결과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나는 이들 청년들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어려움과 끈기 그리고 노력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가난해도 소외된 어린 시절 사회에 대한 반감이란 편견 없이 자신의 처지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오직 성실함으로 모든 고통을 감수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주인이나 손님이나 결국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람다운 정감만이 있을 뿐 거기엔 어떤 편견도 없었던 결과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동 한 그릇」이 주는 동화의 감동적 정감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그것은 당연히 여러분만의 것이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편견을 끼고 다니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결국 성공의 자리에 이른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걸어온 지난날의 행적에 비쳐보면 무언가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겠죠. 바로 그런 점에서 편견을 중심으로 「우동 한 그릇」에 대한 뜻을 자신에 묻고 대답함으로서 여러분에게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 그것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 나의 희망입니다. 주인도 손님도, 행색이 이렇든 저렇든, 건강하든 잠시 장애가 있든 나쁜 뜻으로 치부하는 편견만은 없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모자식, 부부, 형제자매, 친구, 이웃들 사이에 편견이 없다면 우린 여기서 이렇게 판을 벌이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빨리 나갈 수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지 싶습니다.


좋은 시간, 보탬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나요? 진심으로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여러분이 여기에 입원을 했거나 했었다고 우습게 여긴다면 그 불행은 너무 큽니다. 사회적 편견의 극치겠죠.


좋은 하루가, 정말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소 상기된 몸을 그들이 주는 박수로 식히며 병동을 나오자 나 역시 「우동 한 그릇」을 얘기하는 사이에 울컥했던 것을 참느라 잠시 머뭇거렸던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다음날 개인면담이 시작되었다. 


반응은 다양했다. 골자는 그러나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꼭 꼬집어 말했다는 경우가 그렇다. 왠지 선사(禪寺)같은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예외적으로 누군가는 말했다. 선생님 PR같이 들렸다고. 좀처럼 웃는 법은 고사하고 늘 불만과 꼬투리만 잡던 그의 표정에 미소가 돌았다. 


“그랬어요. 그렇담 그건 나의 큰 실수, 잘못이었네요....”


이어지는 미소, PR시대인데 그렇다는 것이라며 그런 뜻은 아니란다. 머쓱했다. 그러나 나는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심상(心象)이 투영된 것이라 해도 없는 것이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과연 자랑하기 위해 늙은 목청을 돋우며 떠들었던 걸까? 역시 편견은 나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있는 법, 그것을 알아차리려는 자세만은 잃고 싶지 않다. 


세상 살다 보면 어디 입맛대로인가, 내가 있음은 네가 있어서 일거고 네가 있음은 또한 내가 있어서 인걸 너와 네가 둘인가 하나인가 아리아리할 따름이다. 미쳤다는 것은 곧 집착과 같은 뜻이라는 게 불가(佛家)의 해석이고 보면 편견은 집착에 의한 것이기에 성한 사람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어디 불가에서뿐이랴 대부분의 경전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상식이 그렇다. 사랑에 미쳤다거나 돈에 미쳤다든가 심지어 공부에 미쳤다하지 않는가. 집착의 결과인데 집착은 필연적으로 편견으로 이어지는 전진기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2010.4.12.)   



 


                                




참고: 


1. 얘기의 출처는 일본의 쿠로 료해이 작「우동 한 그릇」


2. 오마이뉴스 인터넷판(2010.4.15.), 물 흐르는 소리에도 놀라는 생존 장병, 군 생활지속 가능할까? 라는 제하에 의견. 


3. 천안함의 침몰은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었다고 2010년 5월 20일 공식 발표되었


   다. 북한제로 알려진 어뢰의 실물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글을 미루어 공개한 연유다. 


4. 해암정사(海岩精舍)라는 긴 시어(詩語)를 남기고 선사(禪寺)갔다는 사람은 떠났다. 


   그의 시어를 실명으로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다른 곳에서 발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