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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파트리크 쥐스킨트 덧글 0 | 조회 9,733 | 2009-04-17 00:00:00
정동철  


작가의 향수를 직접 읽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고 말 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되지만, 작가 자신의 특이한-가령 자신의 모습을 밖으로 보이려 하지 않는, 태도 같은 것과 인간의 본성 가까이 시계추처럼 늘 왔가갔다하는 본질적 진위가 옳든 아니든 그 글에 대해 쓴 저자의 평 속에 저자 자신의 내면과 일치되는 다분히 다듬어진 양극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좌우든, 동서든, 남북이든 하여간 방위가 문게가 아니라 씨줄과 낫줄이 늘 공존해야만 하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작가의 구상에 대한 평논에 대한 소감을 쓰기엔 이미 벅차므로 그런 차원은 접습니다.
다만 저자가 써 내려간 심성 뒤에 존재하고 있는 또 다른 세계는 그러나 더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 그것은 정신과의사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계추가 적어도 죽지 않은 상태라면 방위와 관계 없이 움직이죠. 중심점을 고집하려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현미경적 관찰에 불과하지 않을까 합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 없이 말입니다.
시계추는 반드시 중심점을 통과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좌우의 한계라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실상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 범위라고 봅니다. 저자는 작가의 향수를 통해 살인으로 이어지면서까지 인간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시도처럼 역시 무언가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움직이는 시계추 전체의 범위가 삶인지, 반복되는 중심점 좌우로 움직이는 어느 찰라적 시점에서 인간의 실체를 관조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이 사람마다 갖는 차이점이지만, 바로 그 점에서 그렇지 싶다는 생각입니다.

느끼는 바 큽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 실체를 그렇게 간단히 알 수 없다는 것, 다시 한번 씹어 보게 되는 글,
많은 분들이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감사드립니다.

정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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