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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새벽의 기억 덧글 0 | 조회 9,595 | 2009-06-21 00:00:00
바이올렛  


단단히 여민 나의 옷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은 매서웠다.


새벽의 기운은 발밑을 맴돌다 그때까지도 불을 밝히던 어느 술집의


휘황한 네온사인 앞에 산산히 부스러졌다.


잰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지는 고개 숙인 드문 발걸음과


이른 시각 하루의 장사를 위한 손놀림은 어딘가 낯설었다.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목욕탕 안은 더운 김으로 가득했고


하나둘 들어오는 벌거벗은 몸들은 아무 말 없이 제각기 허물을 벗었다.


이따금씩 들리는 두런두런한 말소리는 끊임없이 찰싹대는 물소리에 말갛게 씻겨 내려갔고


바쁜 움직임만 홀로 남아 있었다.


저마다의 치부를 드러낸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거나 지나치게 당당하였다.


거울에 비추어진 뭉클한 내 모습은 무척 위태로와 보여서


도망치듯 유리문을 빠져나왔다.


주섬주섬 옷을 꿰차고는 젖은 머리칼에 옷이 젖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하게 생각났다.


재촉에 못이겨 로션도 못바른 맨 얼굴로 나온 바깥에는


밤의 잔재도 술집의 불빛도 남아있지 않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나오는 하얀 입김과 폐 속 깊숙이 들이마셨던 한모금의 담배연기는


한데 뒤엉켜 새벽 속에 사라지고 있었다.


 


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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