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의 ⌜피톤치드⌟는 어디로 갔을까?
2014.08.24.
정 동 철
들이 키고 다시 맡아보는 피톤치드, 숫내 둔치의 잘린 잔디밭에서 유혹하는 그 상큼 시원한 내움 등산로엔 왜 그것이 없지? 살균, 심폐기능강화 딱히 그때문은 아니다. 경포대 솔밭의 피톤치드 잊혀 지지 않는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누군가 앞선 등산객이 다 맡아갔기에 남겨진 것이 없어 그럴까?
일요일 아침 아내는 교회로 나는 종지봉 향해 산길에 오른다.
우거진 숲 적당히 촉촉한 등산길 애써 벌렁거리지만 그 시원 상큼한 피톤치드는 없고 한발두발 숨만 차온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뫼만 높다하더라..... 엉뚱한 염불에 땀 알아챈 모기에 두 방 피를 보시하고 잡다한 생각들 할딱할딱 사라진다.
정상을 향하는 산길 그러나 거기엔 언제나 내리막이 있어 한숨 돌린다. 예외 없이 다가오는 산길 정상 가까워질수록 더욱 가파른 오르막 헐떡이는 숨도 모자란다. 잠시 쉼표를 찍고 싶은 마음 없지 않지만 끝장의 마침표 이전엔 잃어버린 습성 오르고 그냥 또 오른다.
정상으로 가는 길의 법칙(?) 반드시 있는 내리막 뒤미처 꼭대기 가까워질수록 오르막 더욱 가파르다. 백운대는 물론 인수봉이 그렇듯 삼포로 가는 길인가?
우거진 나무로 내려다 볼 아파트 숲 보이지 않아 털썩 벤치에 앉아 크고 긴 숨 들이마시다 내쉰다. 아직 고르지 못한 숨 두 팔 높아 들고 늙어 둔해진 코로 한 것 산마루 공기 말술처럼 들이켜 보지만 누군가 싹쓸이를 했는지 없다. 갑자기 박새 한 마리 발 앞에 눈이 놀란다. 숨 딱 죽여 그 작고 깜찍한 새 주변 뭔가 찍어대는 모이 행여 방해될까 사르르 내 쉬니 팔딱 펄쩍 하나가 된다. 산은 산인가?
흘러가는 세월 발아래 시정 시끄럽기 그지없는 가운데 여긴 매미소리뿐 밀교예배당처럼 숨죽여 박새만 쫓는다.
그나저나 땀은 왜 나는 거지?
올라오는 길 힘들어? 왜? 오른다고 왜?
올라오니 그렇지 왜라니... 위치에너지를 거슬러 잡아당기는 땅의 중력을 어겨 그렇다고? 꼭대기에 이를수록 더 가파른 것은 뭐지?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던가... 그렇담 인생의 케이블카는 어디쯤에 있나?
어차피 내려올 길 왜 땀 빼고 올라 씩씩거리며 그나마 마침표도 찍지 못하는 인생이라 한이 남아서? 삼포로 가면 끝날까? 빨간 마침표, 일장기 보며 연상되는 그 점 하나, 아무렴 그래봤자 마침표 거기 지구상에 없듯 훌훌 내려오는 길 역시나 마침표 보이지 않는다.
오를 때 내리막길 잠시 홀가분하듯, 하산 길 씽씽 내달리나 으레 있는 오르막 숨차 그런가보다. 그게 아니라 아스팔트길 신호등 널려 내 발길 간섭 많아 그것으로 마침표 끝내 기름 냄새에 묻고 만다.
팔십 세월 한없음 풍요가 아니다.
어찌 원망과 한없이 살았겠는 가 만서도, 결핍이 불만의 탓 아니고 욕심 때문이었음 어렵사리 산행에서 겨우 얻어낸 덕택이라 시끌버끌 요란 벌떡 숲속에 내던지니 귀청이 조용하다.
하기야 산을 덮고 있는 식물이 햇볕 받아 물과 탄소를 에너지로 이용해 살고, 나 인간 즉 동물은 식물 뜯어 소화를 통해 살면서 다시 이산화탄소와 물을 식물에 내주니 돌고 도는 순환법칙으로 살기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란 자연의 섭리, 생사일여(生死一如), 산 없는 물 없고 물 없는 산 어디 있으랴 개개인의 생사는 확률인지라 자연의 이치를 어쩌랴...... 고려 말 정몽주를 회유하려는 이성계의 만수산 드렁칙을 말함이 아니다.
열역학(熱力學) 제2법칙,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유용한 에너지를 쓰고 나니 ⌜공공(公共)의 적(敵)⌟이 없다는 우리의 유별난 이념갈등에서 피톤치드의 살균효과는 고사하고 역한 비개처럼 살찐 머리의 공격성(攻擊性)은 쓸모없이 마구 터진 결과 에너지로서의 무용지물 엔트로피만 증가한다는 것, 역시나 마침표는 찍힐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논리를 증명하는 수학(數學)과 확률적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말짱 허구였던가? (201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