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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흔적 덧글 0 | 조회 4,299 | 2021-10-17 00:00:00
관리자  

모두의 흔적

2021.10.17.

정신과의사 정동철

돈을 버는 건 피땀으로 얽힌 노력, 쓰는 건 예술임을 깨달았다.-어느 환자의 말.

 

오징어 게임’, 감히 거론할 형편이 아니다. 다만 나는 누구의 노예인가를 심각하게 돌아보게 된다. 인생 85년 누굴 위해 살았는지 의문이다. 돈과 명예에 노예가 되어 목숨을 이어온 똘만이같아서다. 딴에는 당당하게 살았다지만..

연애결혼을 했다. 1960년대 초, 사주팔자를 따지는 어머니와 누님 사이에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학위논문 정신분열증 빙의(憑依-신들림) 환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1972.국회도서관)를 했었기로 미신적 사고방식에 저항해서가 아니다. 60년 전의 일, 그렇다고 의사(醫師)가 되었다고 고고해 그런 것도 아니다. 부모에 대한 저항감 아예 그런 것은 없었다. 필경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을 것, 사랑,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맞을까?

 

정확히 말하면 정초 토정비결로 시작되는 한해의 인생사, 복을 위해 미리 액()땜을 한다던가 이사를 포함 대소사 동서남북으로 손 없는 날을 택하곤 했다. 대청마루 대들보엔 부적이 붙었다. 것도 모자라 정안수 장독대에 떠 놓고 아들(강정기 입대)을 위해 새벽마다 비는 어머니, 팔자라는 것이 늘 사회 속에 함께 숨 쉬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별생각 없이 그 속에서 살았다. 고사(告祀) 시루떡 돌리며 이웃 간에 정을 나누고 행여 염병이라도 돈다 치면 귀신 물러가라 휘휘 대문 밖으로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한데 1954년 대학 입시 때, 무꾸리와 푸닥거리엔 질색, 역시 그뿐이었다. 내가 휘둘리지 않고 할 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또래의 과거는 거의 엇비슷했을 것, 절에 칠성각(七星閣-수명장수)이 있다는 것은 우리만의 얘기가 아닌가? 관습이려니 그 때문에 나의 의사결정이 변하진 않았을 뿐이다. 시시비비도 물론 없었다. 문제는 결혼에 그런 것들이 작동한다는 점에선 공감이 되지 않았다. 사랑에 넋 나간 정신 때문에 결혼을 더욱 확실하게 결정했다. 장인은 목사라 역시 반대했다. 난 종교가 없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있으랴? 결국 3남매를 낳아 오늘에 이르렀다. 나름 이성적이라며 살아온 결과, 탈 없이 산 셈이다. 지금도 변함은 없다. 내 일도 바쁜데 누굴 탓하랴, 그런 틈은 생각도 못 했다.

 

세상은 변했다.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고 미국에 잠시 연수를 갔다. 이어진 학위논문은 빙의 환자로 귀착됐다. 미국 정신병동에선 볼 수 없었기에. 시골 할머니가 어려서 죽은 딸의 목소리로 엄마, 난 싫어, 먹고 싶단 말이야..’ 그러다 돌변 죽은 영감의 목소리로 걸걸하니 험한 소리를 내질렀다. 목소리뿐이 아니다. 몸짓까지다. 자그마치 4명의 사자(死者-시모,시동생)의 혼이 뒤집어 씬 상태, 왜 이런 상태가? 연구의 동기다. 놀랍게도 요즘 웹툰이나 소설의 핵심 줄거리인 환영(幻影), 빙의(憑依), 환생(還生)이 판을 치고 있는 소제의 한 부분이다. 세상이 거꾸로 간다. ? 정말 있나? 혼이 아니라 망상(妄想)과 환시(幻視), 그래서 난 신들렸다는 환자들을 이해했기에 치료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시골에선 귀신이 든 탓이라며 때려서 쫓아내려 했다. 오즘싸게 어린이들은 키를 뒤집어쓰고 마을을 돌던 시절, 나도 키를 썼던 기억이 있다. 돈암동에서 미아리 고개 좌우로 선거철이면 북적거리던 것은 얼마 전까지도 흔한 일이었다. 용한 점집에서 부적을 비싸게 지니기 위해서다. 정치인들 말이다. 마을 어귀 성황당(城隍堂)에 걸린 울긋불긋 마치 몽골의 천막같은 집에 걸렸던 것이 옮겨왔던가? 두 손 모아 빌며 돌을 던지는 것이 자신과 마을을 지키는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난 시비가 없었다. 자신만 스스로 원하는 걸 정하면 그뿐이었다. 단군설화, 호랑이 대신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단군을 낳았다며 믿는 사람이 있으려나? 하지만 건국신화는 삼국유사(, 一然:광조출판.1972)에 실려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만의 얘기도 아니다. 나라마다 신화는 널려있다. 1792년 정신병자를 묶어 가둬놓은 사슬을 풀어준 것이 그 유명한 빠리의 피넬이였으니 말이다. 요즘 왕()자를 놓고 무섭게 한가한 시시비비가 진행되고 있다. 기를 쓰고 다루는 신문엔 오늘의 운세가 주기적으로 실린다. 그건 과학이라서? 아 역학(易學)? 하긴 화천대유(火天大有)나 천화동인(天火同人)은 주역(周易:현암사.서울.1970)에 있눈 괘, 어이없게도 세상을 틀어쥐고 있으나, 각자 소신대로 판단할 일일 거다. 나름대로의 시각? 그런 것치고는 마귀같은 향()이 너무 쎄다. 아님 편해지련만..

 

확실히 세상은 변하고 변했다. 넷풀릭스로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웹툰이나 웹 소설로 100억을 버는 시대다. 나는 일찍이 빙의 환자를 연구했으니 선견지명, 한데 억()은커녕 만원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 200억 투자를 받고 30조원을 넷풀릭스에 안긴 오징어 게임, 한국 거라면 무지막지 막고 보는 중국에서도 번지고 있다. 왜일까? 자본주의 돈의 위력을 막자는 것, 하지만 그들도 돈엔 환장하고 있어서일 거다. 결국, 뭔가 제법 아는 듯 사소한 것이라도 나에겐 체험이 없었다. 때문에 빈 손일 거다. 따라서 아무리 보잘것 없어도 몸으로 체험을 했어야 했고 그래서 하려 한다. 연구한다고 해봤자 체험에 의한 경험이 없으니 돈으로 연결될 고리를 잡을 수 없었음은 당연지사. 청춘들은 한대 날쌔다. 무엇이 참일까? ? 참을 찾을 때인가? 맞다. 의사라도 돈을 벌어봤자 노예가 되긴 마찬가지, 선행된 공정이란 묘한 규칙 때문에..

오징어 게임의 노예들은 그래서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호할 것이다. 그들도 그러니까. 토건업으로 1000억이란 돈은 돈도 아닌 세상, 역시 참이 무엇이며 노예가 어떤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어릴 적 멋진 제기를 만들 때의 엽전 정도? 나는 그래서 집중력을 잃고 있다. 글을 쓰자(찍자)니 뭉치는 명치가 반기를 든다. 생명을 걸다니, 팔자일까? 누가 정해줬지? 유전자 DNA. 실없는 헛소리 부모님의 혼이 내려왔단다. ? 웹툰-웹 소설의 줄거리처럼? 빙의, 환생, 그 혼들의 얘기? 21세기 첨단의 흥미진진한 얘기들로 100억은 간단하다고? 하니 나는 헛살았다. 공정성이 외면된 이 사회에서 어쩌랴, 팔자인걸.

 

금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화학상 그리고 물리학상 깡그리 미결로 되어있던 인간의 의식세계를 파고들던 나는 어쩌면 맥을 같이하는 새로운 감각 수용체, 쉽게 말해 다양한 센서를 전위차(電位差)에 의해 확인하고 있는 시대로 가고 있음을 본다. 조만간 닥칠 지구상의 기후 돌변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것들이 예사롭지 않다. 때에 무꾸리와 부적으로 시시비비 무섭도록 한가한 사람들, 인간의 심성, 그 의식계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때에 최소화 나노의 한계로 AI 반도체가 조만간 실용화될 형편이다. 이미 전자기장(電磁氣場)에 의한 반도체가 오락가락, 이른바 4나노 핀펫(FinFET-생선 등지느러미)에서 겟올라(GAA -Gate All Around) 3나노가 활개 칠 반도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자외선 14나노의 D램을 거치면서 말이다. 한데 200억의 투자를 받고 30조원을 만들어준 오징어 감독의 마음은 편할까? 억울할 것 없을 것 같다. 세상은 이미 변해가고 변할 것이니까. 앞에 말한 AI 반도체완 달리 패이스북은 산하 네트워킹 50억을 넘는 고객으로부터 변을 당하기 직전인지라, 반대로 나와 한국의 작품을 꽁꽁 묶어 새로운 특수 매장(풀랫폼)을 통해서만 파는 전략이 나올 법도 해서다. 물론 역설이다. 혼에 팔려 따라올 사람들 아닌데 이 헛소리의 출처? 엉뚱한 나의 머리, 1.4Kg의 작은 뇌다. 1000조 개의 시냅스(synapse 신경연결고리)1000억개의 신경세포를 얽어 무서운 속도로 감각과 지각, 생각이 연합피질 사이를 통해 의식계를 지배하고 있는 까닭에서일 거다. 내가 나의 뇌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날 조정하고 있다. 이미 태초부터의 진리, 비로소 이제야 놀라자빠지는 형편, 얼마나 형편없는 멍청이였던가. 한편에선 혼과 기술을 음악에 비벼 3D 아바타로 하여금 뇌파(腦波) 데이터를 영상으로 변환하여 그야말로 관객을 홀리고 있는 세상, 하여간 그나마 눈치를 챘다는 것이 다행이다. 물론 어차피 나 죽은 뒤의 얘기니까 머리 쓸 일은 아니겠지만, 마귀와 현실은 사실일까?

어쩧거나 난 배짱대로 사주팔자 보지 않고 결혼 60년을 살았다. 글쎄 손녀들 어떻게 살 건지 거기까진 그들의 몫, 간섭할 일은 아닐 것, 미국에선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인들이 더 난리란다. 랄랄라 희닥거리는 그들 틈에서 바쁜 모양이다. 내가 걱정할 일은 정말 아닐 것이다. 양자역학을 파인만(노벨수상자-1965)은 서양장기(체스)와 같은 게임에 비유했다. 규칙 때문이다. 웹 소설이나 넥플릭스를 통한 오징어 게임은 혹시 또 다른 규칙의 대장동 게임으로 무섭게 엮이고 있는 건 아닐까? 숫내(성남의 炭川) 물은 도도히 흐르고 있다. 금년도 노벨상, 생물학 관점에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유입된 전기(電氣)화학적 자극을 종합하면 주변 모든 환경과 사람들을 알아차려 3차원적 세상으로 환원된다. 그렇다고 의식계(意識界)의 체험이 증명된 것은 결코 아닌 것처럼. 왈가왈부 수사(搜査) 중에도 하여간 피 터지게 한가한 사람들을 포함 어쩌면 인간사 그 다양성은 오징어 9개 게임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종합적 게임일지도 모른다. 묵묵히 따라가며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는 나의 한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떤 환자와의 상담에서 그가 남긴 말, ‘돈을 버는 건 뻘뻘 흘린 땀의 결과, 쓰는 것은 예술이라했기에 난 공감이 크나, 미묘한 현시대정신에 어울릴 공정게임의 원칙적 규칙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뿐이다. 아닐까? (202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