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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 수 있는 세상, 있을까? 덧글 0 | 조회 2,865 | 2022-12-22 00:00:00
관리자  

홀로 살 수 있는 세상, 있을까?

2022.12.22.

정신과의사 정동철

 

 

수요일 외래환자를 보는 어제 아들에게 메신저를 통해 보낸 글이다.

코로나라고? 후유 현상 어떤지, 나는 어제 아니 그제 월요일 다녀와 아무런 증상이 없네. 정원장 특별히 유의해야겠지. 혹시 관의 제제? 없으리라 보네 만..

 

내가 말할 때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듣기에 마치 지시형’, 심지언 명령형으로 들리는 경우가 있는지, 이미 수술 후(고엽제 후유 폐암-5년 전) 그런 생각 자체가 없고 오로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의문점을 묻곤 하는 것이 전부인데 듣기에 따라 그렇지 않다고? 그렇담 나의 실수, 전연 그런 의도가 없네. 오로지 정원장을 돕기 위한 일념으로 묻곤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 참고해주기 바라네. 지금도 마찬가지 마치 훈교하듯 하는 말이 아니란 뜻일세.

 

참고되기를 바라고, 월요일 외래환자처럼 병원엘 잠시 들리려고 하네. 처방을 직접 내야 하는 예민한 환자의 경우가 있어서.. 가도 괜찮을지? 병실엔 가지 않을 전제하에 말일세..

글쎄 혹 아버지란 위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늘 과잉 염려, 걱정을 하는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 훌적 그런 관점에서도 떠났으면 하는 마음 잘 아네.. 소심하지. 공적 병원이란 점을 잊고 말일세.. 조심하겠네. 수고!

 

집 지하주차장엘 다녀왔다. 복지카드(고엽제 후유에 의한)를 뽑아오려고. 한데 이건 완전히 딴 세상이다. 6, 7십대 젊은 시절 150살까지 살겠다던 친구 결국 먼저 떠나면서 일상의 모습, 층계를 오르거나 미슷한 경우 두 팔을 벌리고 뭔가를 잡으려는 형세 지금 내가 딱 그 모습이다. 문제는 모습도 그렇지만 숨이 멎을 듯 올라와 침대에 누우니 온몸 특히 두 어깨가 유난히 아프다. 전신 모든 근육이 다 그렇다. 대체 정체가 뭘까? 숨 몰아쉬기 바쁜 형편 좌우로 오락가락 몸이 공중에 뜬 기분이다. 전신 근육에 남의 살이 무겁게 붙어있는 듯 움직일 때마다 편치 않다. 언제까지? 스스로 의사란 자가 자가진단을 못 내린다?

 

아파트 스물 몇 개의 지하 계단을 조심 조심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난간을 집고 내려가고 올라온 것이 사단임을 알았다. 통상 만지지도 않던 난간 지지대 그러나 힘든 것도 아닌데, 결국 얼마나 자신의 근육을 아끼고 보살폈으면 이 지경, 예삿일이 아니다. 결혼식에 갈 수 있겠나 싶어서다.

내일 딸이 온다. 안과엘 가니 계산을 복지카드로 하겠다는 심사 나도 돈에 노예가 되어가나? 일주 전 복지카드로 결제를 하니 득달같이 알려주던 출금이 오지 않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교생의 희망이 운동선수, 교사, 웹사이트 운영 전문가란다. 역시 그들도 돈 때문인가? 손녀의 신랑에 뭘 말 해 줘야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돈일까? 물론 아니다. 우선 서로 믿고 이해하고 귀담아듣고 솔직한 심정을 밝히며 공감대를 넓혀가는 긍정적 자세 그런 것이 중요할 것이라 할 작정이다. 잘 들어줄까? 중요한 건 돈인데? 그나저나 우선 몸이 움직일만하면 좋으련만 문제다. 봐야 말을 하지..

 

그제도 같은 상태의 몸으로 인천 아들의 병원으로 갔었다. 처방을 내고 왔지만 가고 오는 운전 길은 그만한데 쌓이는 겨울눈 때문에 지하에 주차를 한 후 올라오는 길목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오늘은 유별나다. 비교 불가.

사는 것이 매양 거기서 거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뢰성을 서로 갖는 것, 나의 겉모습을 보면 멀쩡하니 훤한데 뭐든 하려 하지 않으니 마땅치 않게 여겨질 때가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의사를 만나러 갈 생각이 없는 심정. 보통 내 나이 87세면 떠나는 게 상식 그 길을 택하고 싶어서다. 진단은 내리겠지만 나의 고통을 속속들이 이해할 사람 아무도 없다 보기 때문이다. 아니 안들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살 만큼 살았으니 하는 말이다. 어차피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고통? 그건 나의 몫일 뿐 아닌가?

뻑적지근하다. 힘 자체가 없다. 아내는 마땅치 않게 여길 거다. 그래서 아령을 들고 운동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나마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포기란 단어를 좋아하진 않는다. 해서 늘 글을 쓰고 전문서적을 읽으며 인천을 주 1-2회 갔다 오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 아울러 아들을 위해, 하루가 지나면 다시 추스를 수 있어서다. 다만 곧 다가오는 결혼식이 걱정스럽다. 행여 초를 칠까 그렇다. 그날만 잘 넘기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뿐인데 이가 잘 맞질 않는다.

 

아들의 답신이 번개처럼 스친다. 의외의 표현이다.

저도 그래요. 칭얼거리는 버릇 셈이죠. 그럴 수 있는 아버지가 있고 그래서 아버지를 힘들게 한 셈이겠죠. 죄송해요..”

찡하다.

오늘따라 천만 근 무거웠던 몸이 조금 가벼워져 눈꺼풀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바로 오늘 오간 문자 속의 이 한마디지 싶다.

 

‘4차 신장개업이란 명목으로 모두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마당에 난대 없이 웬 코로나? 부화를 참을 수 없어 치미는 형편에 가문의 대사(大事)운운하는 늙은 나 역시 호사다마(好事多魔)를 걱정하던 참이라, 더구나 요즘 독거혼(獨居婚)이 넘쳐나는 세상 때문에 아들과 제법 벌어진 견해차가 기름에 불을 그은 격, 물론 그나마 남편이 병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며느리가 모든 것을 잘 도맡아 하고 있는 마당에 표현의 차이가 폭발한 셈이지 싶다. 누굴 원망하랴. 바로 나 자신의 옹졸함 늙어빠진 심정을 두고 말이다. 그럴듯한 사람 모두가 실제의 대통령과 또 다른 대통령인 듯한 미묘한 세상에서 살자니 철렁거리기만 한다.

 

슈뢰딩거(1887~1961)는 그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2007.궁리출판)의 서문(1944)에서 말했다. ‘누군가 과감하게 오류를 범한 위험을 감수했다면 사실들과 이론들을 종합하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뿐이다.’ 바로 나 자신부터다. 과학적 진위(眞僞) 여하를 우기며 마치 독불장군, 정말 홀로 사는 세상이 있을 수 있겠나 한 듯 웃긴다. 출판계에 진보성향 우선주의가 있을 거라는 주장이 넘실거리긴 하지만 소문일 뿐 글쎄 사실과는 다를지 모른다는 것처럼 말이다. 한데 글쓰기가 난데없이 왜 으스스 소름 돋듯 미묘해질까?

 

다행히 아들로 해서 찡해진 마음, 별똥이 떨어진 기분이다. 그래서다.

내일이면 아령을 들고 열 바퀴를 다시 돌지 싶다. 결혼식 참석은 가뿐 숨이라 모르겠다. 내내 걸리는 것은 미국에서 오는 손들에게 집안의 어른으로서 어떻게 접대해야 할지 그것이 매끄럽게 풀리질 않는다는 점이다. 며느리가 말한다.

건강하게 참석하시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아무것도 딴 건 걱정하지 마세요.“(2022.12.22.)